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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올 추석엔 얼굴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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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올 추석엔 얼굴 볼 수 있는가?
  • 안현경 기자
  • 승인 2012.09.25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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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홍성에 사는 한 아버지가 객지에 사는 아들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편지로 재구성했다. 부자의 이름은 본인들의 요청으로 밝히지 않는다. 안현경 기자/

아들아, 잘 지내냐. 아까는 이번 추석 때 올 건가 싶어서 전화했다. 직업군인이다 보니 명절에도 나오는 것이 쉽지 않겠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그러려니 한다. 직업군인이 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새삼스럽게 옛날 생각이 난다. 내내 하던 양궁을 그만두고 군대 가서 직업군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가.

서울서 네 누나를 병으로 잃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네가 초등학교에서 시작하게 된 양궁을 참 오래도 하게 됐다. 초등학교 마치고 가족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 네가 충남도 지역 체전 다섯 경기를 휩쓰는 바람에 사방에서 널 데려가려고 야단이었지. 덕분에 우리는 여기 머물게 됐지. 네가 체고를 들어가 마의 1280점대 앞에서 방황하던 때도 생각난다. 나는 그저 선생님헌티 “어디 부러뜨리지만 말고 패주쇼” 하고 맡겼었는데. 이제 양궁 하기 싫다며 전국 방방곳곳으로 돌아다녔던 너를 찾으러 다녔던 것도 생각난다. 내가 집 전화기 옆에 떡 하니 발신기 붙여다 놓고 공중전화박스 번호로 서울 관악구청 앞에서 너의 행방을 찾았을 때 너도 놀랐다고 말했지. 나는 체고니까, 일반계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게 힘드니까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싶어서 그랬다. 다행히 그때 잘 넘기고 1300점대도 무사히 넘어갔지. 다른 지자체 소속 선수로 계속 활동했고. 국가대표가 안 된 거는 순전히 운이 안 좋았던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입대해서 중대장이 어느 날 사격연습할 때 30발 다 명중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원들 모두에게 100만 원어치 술을 사주겠다고 했었다며. 양궁선수인 네가 30발 다 맞췄을 때. 중대장은 “양궁선수라서 무효”라고 했다지. 90m 넘는 곳에서도 딱딱 맞추는 양궁선수인데 고 거리에서 니가 어찌 못맞추겠냐. 어찌어찌 술은 사줬지만 결국 네 생활비며 내무반 생활비에서 까였다는 이야길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그래도 요즘은 직업군인도 경쟁이 치열한데, 발령 시험을 잘 봤을 때 좀 놀랐다. 나는 운동만 시켜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좋아서 말이다. 아무래도 양궁이 집중력을 발휘하는 운동이라 그런가? 지금은 장기복무 시험도 무사히 치르고 앞으로 기무사를 갈까 미국으로 갈까 이야기하더니만 나는 미국보다는 한국에 있으면 좋겠다.

아들아. 나는 네 목소리에 지어지는 얼굴 주름이 다르다. 동네 동생 놈이 “형님, 삼겹살 2인분 시켜놓고 소주 6병 마시는 부자는 처음 봤슈” 그러더라. 매일 전화하고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 한번 만나면 그간의 이야기를 쭉 털어놓고, 너도 새벽 2시에도 “생각나서 그냥 전화했슈” 하고 말하는. 우리가 이런 사이인 것이 좋다.

결혼? 아이? 나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니가 누구를 데려오면 ‘데려오는가 부다’ 하고, 니가 결혼해서 살면 그제야 ‘사나부다’ 할란다. 알아서 잘 하지 않겠나. 참, 핸드폰 바꿔 준다더니 어떻게 됐냐? 나는 스마트폰 같은 건 필요없고 그냥 지금 쓰고 있는 것 같은 거면 된다. 뭐 그냥 하는 말이다.

9월 24일 홍성에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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