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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 선생의 생애와 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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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 선생의 생애와 춤 인생
  • 김복실
  • 승인 199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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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백운채에게서 춤추기와 북치기 공부
- 1874년 6월 12일 충남 홍성군 홍주골(고도면 남하도리-갈리도리)에서 부친 한천오와 모친 김씨 사이에 6남매쭝 맏아들로 출생하여 6, 7세때에는 장안에서 민속무용과 줄타기로 유명했던 조부 백운채에게서 춤추기와 북치기를 공부하였다.

- 8, 9세가 되어서는 줄을 타거나 재주를 부렸고 14세가 되면서 홍성 서학사에게 줄과 재주를 3년간 공부하였으며 17세(1890)에는 덕산골 수덕산에서 박순작 문하로 20세가 넘도록 춤과 장단을 공부하였다. 선생은 그때부터 장악원의 명고수가 되어 5년동안 15차례의 창접(콩쿠르)을 치루어 춤과 더불어 북장단을 완성하게 된다.

- 21세(1894)에는 동학혁명에도 참가하였으며 22세부터는 굿중패, 남사당의 놀이패, 당굿, 모래굿패 등에 참가하여 10여년간 유랑생활을 하였다.
- 35세(1908)에 이르러 완성된 춤과 북장단을 가지고 한양길에 올라 고난의 연속이었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명고수로서 서울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송만갑 협률사의 일원으로 정기적인 무대에 고수로 출연하였다. 그후 김창환, 정정렬, 박기홍,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등 명창의 수행고수로 활약하였다.

- 55세(1930)에 선생은 전문적인 전수교육기관인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50년 고수생활을 정리하고 춤 활동을 새로이 시작하였고 61세에는 한성준 조선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음악과 한국춤을 정리하여 창작하면서 제자들에게 교습하기 시작했다. 62세에는 부민관(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첫 작품발표회를 가졌는데 그동안 정리하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고대춤, 궁중춤, 향토춤을 집대성하여 제자들과 함께 공연하였다. 이때 공연된 작품으로는 승무, 태평무, 학무, 한량무, 신선무, 살풀이,검무, 오방신장무, 사공무 등이 있다.

- 67세에는 새로운 춤들을 재구성하여 시민회관 별관에서 제2회 공연을 하였는데 그해 4월 제자들을 이끌고 조선문화말살정책의 총본산인 일본 동경 히비야 공회당에서의 첫 해외 공연을 가졌다. 69세(1942)에 이르러 거동이 불편해지자 선생은 손녀 한영숙에게 그의 모든 춤을 물려주고 낙향하여 그해 7월 11일 세상을 떠나셨다.

벽사 한영숙 선생의 약력

1920년 2월 26일 천안출생/ 33년 홍성 갈미보통학교/ 37년 10월 부민관에서 제1회 무묭발표회 개최/42년 7월 조부 한성준 선생 작고로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한영숙 고전무용연구소로 개칭 발족/42년 12월 조부 한성준 추모공연 성보극장에서 개최/60년 국악예술학교 교사 취임/62년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취임/6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69년 7월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 지정 획득/ 70년 국민포상 대통령상 수상/ 71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 제 40호 학무 지정/72년 8월 뮌헨올림픽대회 민속예술단 참가/74년 수도여자사범대학 무용과 조교수/80년 9월 대한민국 예술원상 제 86호 수상/88년 10월 제24회 서울올림픽 폐회식 출연 살풀이춤/89년 9월 8일 별세. 경기도 여주 남한강묘원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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