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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새로운 미래 비전 제시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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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새로운 미래 비전 제시할 사람
  • 윤종혁
  • 승인 2022.05.16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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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오배근 홍성군수 후보

1955년 2월 24일 홍성읍 오관리2구에서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 오준영과 어머니 이복순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의 공직 활동과 모친의 뛰어난 친화력 덕분에 어린 시절은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1967년 홍성초등학교를 57회로 졸업했다. 57회 동창들은 360명이 입학해 215명이 졸업했는데, 당시 홍남초등학교가 생기면서 학군 조정으로 2학년 때 홍남으로 전학 간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배근 후보가 홍남초 졸업생들과 친구가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어머님의 친화력을 물려받았고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좋았다. 주위에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리더십이 생겼다. 운동에 두각을 나타내 고등학교 때는 양궁 충남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체육에 흥미를 느껴서 인천체육전문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배구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86년 홍주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체육교사가 됐다. 당시 홍주고에는 육상부와 유도부가 있었다. 충남에서 상위권 실력이었다. 육상부를 맡아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킨 결과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학교라는 테두리가 너무 좁았다. 1년 만에 학교를 나와 본인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교성 좋고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

오배근 후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지금은 고인인 된 부인 오정자 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쳐 첫사랑과 결혼을 했고,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오정자 씨는 홍성군미술협회장과 홍성예총 회장을 역임하면서 홍성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는데 암에 걸려 2013년 9월 바람처럼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오배근 후보자에게 오정자 씨는 그리움의 존재이다.

30대 초반 먼 친척의 소개로 림스치킨이라는 회사의 납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사회경험 부족과 경영 미숙으로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닭과 관련한 사업을 접고 잠시 다른 일을 했지만 함께 일을 했던 친구 양희권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전에서 페리카나를 창업해 성공했다. 이후 친구의 도움으로 ㈜하림 계열사 CEO로 발탁됐다. ㈜육성 대표이사, ㈜경우 대표이사, ㈜멕시칸 대표이사, ㈜멕시칸산업 대표이사 등 하림에서 15년을 보내며 경영에 대한 공부를 했다.

홍성군체육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어린 학생들 꿈나무 지원 육성과 홍성 출신 양궁선수들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등 체육인으로서의 입지를 드높였다. 이후 홍성군생활체육회 사무국장과 회장을 역임하면서 홍성군 체육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해 왔다.

청년 시절부터 홍성청년회의소에 가입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 홍주라이온스클럽, 홍성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홍성여중 학교운영위원회, 홍성고 학교운영위원회 등 여러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또한 백제문화제 사무처장과 국제라이온스 356-F지구 충남·세종 사무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뚝심의 정치 인생 30년…의리 지키려 탈당

오배근 후보의 정치 인생은 30년이 넘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정치 활동을 하다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홍성군의회 선거에 출마했으나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실패를 거울삼아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기반을 쌓은 후 2002년 제4회 홍성군의회 홍성읍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1위와 49표차라는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이후 2006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충남도의원 1선거구에 출마해 첫 당선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농수산경제위원회와 의회운영위원회, 충남도청 이전 추진 지원 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2010년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도의원 재선을 노렸지만 자유선진당 유기복 후보에게 1235표 차이로 졌다. 4년 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경선에서 유기복 후보를 이긴 뒤 본선에서 이두원, 정영희 후보를 누르고 재선 도의원이 됐다. 문화복지위원장을 역임하고 내포발전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오배근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을 택한 것은 친구와의 의리 때문이었다. 2016년 제20대 홍성·예산 국회의원 선거에서 ㈜페리카나 대표인 친구 양희권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정당보다 친구와의 의리가 우선이었다. 친구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현역 도의원 신분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얻는것보다 잃는 게 많았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다. 결국 새로운 정치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

2018년 지방선거에 홍성군수로 출마하고자 했으나 경선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야인으로 돌아가 당을 위해 활동을 이어나갔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백제문화제 추진위원회 사무처장에 임명했다. 도지사 정무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다시금 군민들의 선택을 받고자 홍성군수에 도전했고, 결국 경선에서 이겨 더불어민주당 군수 후보가 됐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한다. 최승천 충남지속가능발전협의회 홍성군지회장은 “본인이 뱉은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홍성 경제를 반드시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전 홍성군테니스협회장은 “어려서부터 뚝심이 있었고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오배근 후보는 홍성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배근 후보자는 폭 넓은 인간관계를 자랑한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면서 형성된 친구들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그가 자신있게 “군수가 되면 홍북 사조산업 축사를 올해 안에 폐쇄시키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조산업 경영진들과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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