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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정신적 구심점 역할 하는 이더러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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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정신적 구심점 역할 하는 이더러 샘
  • 홍성신문
  • 승인 2021.10.0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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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생명수, 마을 샘을 찾아

홍성군 홍동면 신기리 반교마을에 ‘이더러 샘’이 있다. ‘이더러’는 ‘이쪽 돌아’의 줄임말이고, ‘저더러’는 ‘저쪽 돌아’의 줄임말로 순수한 충청도 사투리다. 정말로 샘 이름만 들어봐도 정겹던 고향 이웃들이 떠오른다.

이더러 샘은 가족 같은 이웃들과 옹기종기 살던 옛 시절이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까운 이웃집에 심부름을 보낼 때, “얘야, 이더러 할머니 댁에 가서 그릇 좀 빌려와라” 하시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려온다. 조금 먼 이웃집에 심부름을 보낼 때는, “얘야, 저더로 할머니 댁에 이것 좀 갖다 드려라” 하시던 목소리가 그립다. 반교마을의 이더러 샘은 역사가 꽤 오래된 것으로 전해온다. 샘 옆에 세워놓은 안내판에는 샘의 역사와 이름의 유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400년 전 삼국시대에 닥나무가 많고 물이 좋아 종이 생산지로 유명했던 잿조실(이 지역 지명) 사람들이 이 물을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임천 조씨 18대 홍유 어르신이 뒷산 줄기에 집을 짓고 사시며 몸종들을 시켜 물을 길어다 먹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근대에 와서 효학리와 신기리 일부 주민들이 사용하며 이더러 샘이라고 불렀다. 극심한 가뭄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 깨끗하고 철철 넘치는 우물물을 먹고 자란 후손들 중에는, 조부영 국회의원과 판·검사, 교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옛 조상들은 이 샘에 신령이 있다 하여 건강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매년 용왕제를 지내 왔고, 현재도 매년 10월에 제를 올리고 있다.

이더러 샘이 위치한 반교마을은 문화적인 안목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모습이 특히 돋보인다. ‘마을의 문화로 마을을 만든다’는 표어 속에서 마을의 문화적인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개최하는 마을 축제 때는 이더러 샘 앞에서 샘제를 지내며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이외에도 마을 수호신 장승제, 제기차기, 윷놀이 등 전통놀이와 제례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반교마을은 독특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마을 입구 굴다리에 전시하고 있다. 이름도 재미있는 ‘할메화가’들의 작품이다. 삭막한 굴다리를 지나가며 정감 넘치는 노인들의 그림을 살펴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코로나19가 전국을 휩쓸면서 반교마을도 행사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반교마을은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전체 마을주민이 모여 반교 마을잔치를 치러왔다. 하지만 2020년에는 주민 화합과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하며 ‘반교마을 이더러 샘제’로 마을 잔치를 대신했다. 참석인원도 코로나19로 인해 최소 인원만 모일 수밖에 없었다. 반교마을의 샘제가 머지않아 코로나19를 물리쳐줄 것이라 믿고 싶다.

옛 시절 마을마다 생기를 불어넣고 생명수 역할을 하던 대동샘들은 상당수가 사라졌다. 물어물어 대동샘을 찾아갔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진 빈터를 마주하면 돌아서는 마음이 참으로 무겁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반교마을은 역할이 사라진 공동샘을 버리기보다는 소중하게 지켜내며 마을의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돋보인다. 조상 대대로 마을을 지켜주고 생명수를 내어주며 훌륭한 인물을 키워준 고마운 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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