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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료원과 함께한 33년 6개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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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료원과 함께한 33년 6개월 15일
  • 윤종혁
  • 승인 2021.07.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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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마지막 날까지 흰 가운 입은 이성구 실장

2021년 6월 30일 오전 11시 23분. 홍성의료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성구 실장은 직원이 가지고 온 결재 서류를 한동안 쳐다봤다. 호흡을 가다듬고 정성껏 사인을 했다. 홍성의료원에서 근무하며 마지막 사인이다. 직원은 “정말 고생 많았다”며 이 실장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 실장은 홍성의료원과 함께 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오른 듯 직원 어깨를 두드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 실장은 홍성의료원에서 33년 6개월 15일을 일하고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별도의 퇴임식은 진행되지 못했다. 이성구 실장은 퇴임 당일에도 열심히 현장에서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맡은바 책임을 다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쉬라고 했지만 이 실장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바삐 움직였다.

광천읍 광천리가 고향인 이 실장은 서울에서 임상병리사로 일을 하다가 1987년 고향에 계신 부모님 걱정에 홍성에 돌아왔다. 당시 임상병리사는 서울의 주요 병원에서 서로 데려갈 정도로 인기있는 직업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그해 12월 홍성의료원에 입사했다. 당시 홍성의료원은 도립병원이라 불리며 지역의 환자들 건강을 책임지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홍성의료원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부모님 지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병원에 올 때마다 이 실장에서 부탁을 하곤 했다. 당시만 해도 홍성에서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홍성의료원밖에 없었다. 이 실장은 지인들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부탁도 여러 번 받았지만 언제나 웃으며 민원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고향 어르신들에게는 홍성의료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됐겠습니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이기에 부모님이라 여기며 제가 할 도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잘해드렸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이제 오늘이면 홍성의료원을 떠나지만 홍성의료원에서의 지난 날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홍성의료원 아껴주고 사랑해 달라”

33년을 홍성의료원에서 보내면서 수많은 생과 사의 갈림길을 봤다. 생명의 존귀함을 가슴에 새겼다.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극단적 행동을 한 뒤 정말로 어렵게 병원에서 목숨을 구했는데 그 환자가 깨어난 후 고통 속에서 ‘살려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실장이 홍성의료원에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홍성의료원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좁은 공간의 작은 건물에서 진료가 이뤄졌다. 조금씩 확장되고 의료 기계가 도입되면서 500병상 이상을 갖춘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됐다.

“병원이 점점 커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만 합니다. 작은 병원이 종합병원이 되기까지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땀 흘려 일했습니다. 의료장비 시설 현대화도 일 하면서 느낀 큰 보람입니다. 홍성에 홍성의료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홍성 군민들에게는 큰 혜택입니다. 홍성의료원을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면 직원들의 사기는 올라갈 것이고 주민들에게 더 많은 의료 혜택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항상 홍성의료원을 아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실장은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어려서부터 한 번도 이사 간 적이 없는 충남드론항공고(옛 광천상고) 인근 집에서 90세가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다. 1987년 고향에 돌아온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지냈고, 어머니 또한 지금까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퇴직을 하루 앞두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아내가 제일 고맙고 감사합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치매 증상이 있으십니다. 직장 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게끔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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