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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기억하고자 같은 일상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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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기억하고자 같은 일상 반복
  • 신혜지 기자
  • 승인 2021.06.14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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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신도시에 사는 정동규(90) 씨는 매일 아침 8시 30분에 내포를 출발하는 홍주여객 버스를 탄다. 홍성전통시장 입구에서 내리는 그는 다시 버스를 타고 홍성축협하나로마트로 향한다. 그가 매일 이렇게 홍성읍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정동규 씨의 아내는 고혈압으로 몸이 좋지 않아 홍성읍내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그는 매일같이 내포에서 홍성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것이다. 지난해 4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도 그는 매일 아내와 함께 보내던 시간을 떠올리며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오전 5시 30분이면 기상해 노인대학에서 배운 지압을 하기도 하며 건강 관리에 힘쓴다. 김밥과 우유, 견과류, 과일까지 소량 챙겨 먹은 뒤에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선다. 전통시장 입구에서 환승해 축협하나로마트에서 하차하는 그는 인근 CU에서 매일 도시락을 골라먹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백종원 씨의 아버지인 백승탁 씨와도 친구 사이입니다. 매일 편의점에서 백종원 씨가 만든 도시락을 볼 때마다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반가운 기분이 들어요”

슬하에 2남3녀를 둔 정동규 씨 부부는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큰아들은 MBC 탤런트로 활동한 故정태섭 씨다. 큰아들을 떠나보내자 아내가 혈압이 높아져 금방이라도 충격으로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둘째 딸이 있는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갔다. 호주 시드니에서 지내며 MBC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고향이 도청 소재지가 된다는 말에 귀국을 재촉했다.

홍성으로 돌아와서도 부부의 생활을 순탄치 않았다. 이번에는 막내아들이 신장이 좋지 않아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된 것이다. “머리가 좋은 놈은 일찍 죽는다더니 신장이 좋지 않아 59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응노 화백 미술 작업 돕기도

1931년 홍북읍 용산리에서 태어난 그는 6년제 홍성중학교를 다니던 당시 학제 개펀으로 3년제 홍성고등학교가 개교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던 중 교직 진출이 보장되는 대전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그렇고 담임 선생님도 대전사범학교 진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어렵게 설득해 원서를 넣게 됐어요”

1950년 대전사범학교 본과 1학년에 입학에는 성공했지만 당시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우선 고향과 가까운 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교사가 된 그는 1953년 홍북국민학교를 시작으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48년 10개월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교직 생활을 하던 중 고암 이응노 화백도 알게 됐다.

당시 교사들은 음악·미술 교육을 위해 초등학교 교사는 음악과 미술을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았어야 한다고 한다. 교육감의 추천으로 수덕여관에서 이응노 화백의 미술 작업을 돕기도 했다. 올해 열린 고암 이응노 화백을 주제로 한 역사인물축제 방문해 가족들에게 이응노 화백의 영상물을 보며 설명하는 정동규 씨의 모습을 본 MBC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뉴스에 출연하는 경험도 했다.

90년이라는 세월 동안 8·15 광복, 6·25전쟁 등 산전수전을 겪은 정동규 씨는 남은 여생을 하고 싶은 것보단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지내고 싶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분재다. 난초를 특히나 좋아한다. 내포로 돌아가려 택시를 잡던 중 알게 된 택시기사 김성수 씨와는 부자지간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다. 김성수 씨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명함을 받게 됐는데 알고 보니 우리 선배랑 아는 사이라서 더 친밀해졌어요”라고 말했다.

그 뒤로 정동규 씨는 홍성에서 내포로 돌아갈 때는 김성수 씨의 택시를 항상 애용하고 있다. 김성수 씨는 “아버님을 태우고 가고 있었는데 어떤 손님이 타려고 하다가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때 그냥 ‘우리 아버님이라서 괜찮다’고 손님에게 말했었는데 그 뒤로 아버님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그렇게 정동규 씨는 김성수 씨를 아들로 생각하며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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