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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여성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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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여성병원으로
  • 윤두영 기자
  • 승인 2021.04.24 0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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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의료재단 서울여성병원 오익환 이사장

“저는 의료서비스를 받으러 서울로 가고, 일본, 미국 등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출산용품을 구하러 일본, 유럽 등으로 향하는 것도 많이 봐 왔습니다. 이들을 인천으로 오게하고, 외국인들이 의료관광을 하러 한국을 찾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여성병원 오익환 이사장의 말이다.

오 이사장은 인천 미추홀구 주안2-4동 재정비촉진지구에 연면적 8만4000평에 달하는 주상복합단지를 건설 중이다. 여의도 63빌딩이 5만여 평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큰 규모의 단일 건물이다. 상업시설이 2만1000평, 병원이 2만3000여 평, 그리고 아파트 4만여 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서울여성병원은 이곳으로 확장 이전 할 계획이다.

“새로 신축중인 병원은 종합병원 규모입니다. 3~5층은 외래진료와 수술실 등의 중앙 진료를 담당하고, 6~13층까지는 입원실을 배치할 계획입니다. 그 중 4층은 산부인과, 유방·갑상선, 대장·항문, 혈관외과를 한 곳으로 모아 여성만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해 여성이 편안하게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새병원 프로젝트는 여성들이 원하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며, 생애전주기를 토탈 케어하기 위한 오 이사장의 고민이 담겨있다. 이 프로젝트는 인천·경기 최초 여성전문병원인 서울여성병원이 세계적인 여성병원으로 나아갈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추진하는 오 이사장은 홍성이 고향이다.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거쳐 인천 제물포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공중보건의 시절 생애 처음 신생아를 받아냈다. "참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다. 산부인과 전공의가 된 계기였다. 남들이 다 기피하는 산부인과 전공의였지만, 오 이사장은 숙명처럼 받아들여 외길을 걸어 왔다. 어려움이 없었겠냐만, 자부심과 보람도 있었다. 충절의 고장 홍주인 답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오 이사장을 만나봤다. ]

△인천지역에서 유일하게 4회 연속(2011~2023년)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정의 의의와 지정되기까지 서울여성병원의 특화된 의료진과 진료과목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산부인과 전문병원 지정은 무엇보다도 의료의 질적 향상과 안전성이 확보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부인과 전문병원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기관 인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의료기관 인증을 통과했다는 것은 지속적인 의료 질 향상과 환자 안전과 같은 가치를 일정수준 이상 만족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인증은 주기가 거듭될수록 조건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병원이 지속해서, 보다 개선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특화된 진료로는 난임과 신생아집중치료실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난임은 산부인과가 있는 병·의원 중 극히 소수만이 제대로 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대형병원(상급종합병원 포함)은 빠르게 진행되는 의술발전 속도를 못 따라 와서, 작은 병원은 신생아집중치료실처럼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어려워합니다. 25년 이상 집중해 온 난임은, 규모로도 전국에서 손꼽히지만, 임신율은 국내 최고임을 자부합니다. 신생아집중치료실의 경우 지역을 대표하는 산부인과 병원으로써 경제적인 부담이 있다 하더라도 아기들을 위해 꼭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개설한 거죠.

△ 의술 이전에 인술을 먼저 생각하고 진료에 임하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질병을 치료 한다’, ‘병을 극복 한다’는 것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전체 치료영역에서 의료인이 행하는 의술은 보조수단으로 봐야합니다. 내 몸이 정상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체항상성, 내 몸을 지키려는 면역체계 등이 더 큰 작용을 합니다. 우리 인체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세포들이 암세포로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 몸이 쇠약해지면, 그 원인이 스트레스든, 음주 혹은 노화든, 면역이 약화되고 암세포는 자리 잡아 세력을 확장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환자는 낫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의료진이 해야 할 우선적인 일은 ‘심리적 안정’을 주는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자 하는 의료진의 태도, 그것을 믿는 환자의 신뢰, ‘인술’이 먼저인거죠.

△산부인과 기피 시대에 산부인과 전문의를 택한 동기와 기피 문제 해소책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예나 지금이나 산부인과가 힘들죠! 하루 24시간, 일 년 내내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이런 과 특성으로 인해 기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각고의 진통 끝에 새 생명이 태어나는 희열은 산모만 느끼는 게 아닙니다. 산부인과 의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그런 희열을 느끼고 있고요. 기피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어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 대도심 이외의 지역에 의료인들이 골고루 포진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점차 나아져야죠.

한편으로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기에 어려움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생을 보람으로 여기고 인술을 천직으로 여기는 의료인이외에도 아이들을 사회의 등불로 키워내는 교육자 등등이 필요합니다. 사회에 필요한 재원들이 지역사회에 발붙이는 데는 전반적인 사회·교육환경도 같이 발 맞춰 따라 와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금마 부평리에서 태어나 출향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고향에서의 특별한 추억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저는 금마초등학교 39회, 홍성중학교 23회를 졸업 후 1974년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인천에 올라왔습니다. 당시 시험 쳐서 갈 수 있는 곳 중 인천이 제일 가깝게 느껴졌고, 친척들도 있어 인천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은 무시험으로 바뀌어 원하는 학교를 갈 수 없었고요. 그러니까 홍성에서는 제 삶의 유년시절 그리고 학창시설을 보낸 셈이겠네요. 좀 특이하게도, 초등학교 때 한 학년에 4개의 반이 있었는데 6년 동안 한 번도 반 편성을 새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끈끈한 점이 남달라 현재도 절반 이상의 초등학교 같은 반 동창들이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냇가에서 얼음 배 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얼음을 크게 떼어내 밀어내자 그 밑에 깔려있던 큼지막한 메기가 드러났습니다. 움켜잡고 집으로 뛰어가 안방 문을 열어젖히고 자랑하려다 방에 물 떨어진다고 야단을 맞았죠. 집 밖에는 항상 넘쳐흐르는 샘물이 있습니다. 도랑으로 메기가 도망가지 못하게 자갈로 담을 쳐 놨고, 다시 정신없이 놀다 돌아와 찾아보니 메기는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술도가 집에서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들고 오시면서 “메기 없니?” 하시고는 집으로 들어가셨죠. 지금에서야 메기가 도망쳤을 리 없고 이미 술안주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고향집은 6살위 큰누나가 살고 있는데, 명절 때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그 시절 추억이 생각나 미소가 지어지네요.

오익환 이사장이 걸어 온 길

학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경력 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전공의/전문의 취득
2000~ 아인의료재단 서울여성병원 이사장
2003년 국무총리 표창/ 2007년 재경부장관 표창/ 2009년 대통령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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