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1:23 (목)
겸손과 배려 문화 만들어가야
상태바
겸손과 배려 문화 만들어가야
  • 홍성신문
  • 승인 2020.09.2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록 전 홍성부군수
이용록 전 홍성부군수

우리가 어려울 때 서로를 사랑으로 보듬어 가는 인지상정이란 말은 우리의 전통생활문화이다.

지금은 어떤가? 동네 주민들 간의 소통 부족에 의한 사소한 분쟁을 군수실에 와서 해결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가족 간의 이견으로 인한 언쟁이 법정으로 향한다. 학생들은 권위가 땅에 떨어진 선생님을 인정하지 않고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만을 옳다고 생각한다. 시골 면사무소의 행정 불만을 군이나 도에서도 모르는 사이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한다. 언제부턴가 우린 민주주의를 개인주의로 착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시쳇말로 ‘세 명만 모이면 집회신고를 한다’는 어이없는 넋두리가 우리의 삶을 더욱 각박하게 한다.

불과 삼십년 전만해도 주민들 간의 소통 문제는 마을의 어르신 한마디에 중재가 되고 쉽게 평온함을 찾았다. 가족 간의 문제는 보기도 힘들었지만 간혹 생긴다 해도 이웃에게 부끄러워 남들 모르는 사이 집안 어른 한마디에 정리가 되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전부이던 시절 선생님은 부모와 동일 시 되면서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었다. 학부모에게 자녀의 선생님은 신뢰와 존경의 마음으로 언제나 예를 갖추는 대상이었다. 행정기관의 불편함은 상급기관에 정중한 민원제기를 통해 불협화음이 아닌 화합의 모습으로 해결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왜 우린 그 좋은 미덕과 배려의 마음을 상실한 채 나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 삶에 익숙해져 가는 걸까?

첫째는 교육의 문제다. 그동안 교육은 우리의 인성과 지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성적 지상주의에 물들게 했다. 중학교 교육의 목적은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각인되었고 고등학교 교육의 목적이 좋은 대학진학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인성을 강조하고 바른 삶을 위한 지혜를 학교에서 가르쳐도 아이들은 학원 선생의 입시를 위한 교육 외의 것은 잊어버리기 일쑤다. 부모들은 입시에 중점을 둔 학원 강사를 선생님으로 인식하고 학교 선생님들은 직업이 교사인 외계인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소통방법도 이해도 배려도 가슴에 품지 못하고 나만이 전부인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둘째 경제의 문제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로 상징되던 시골 출신이나 경제적 빈곤층의 출세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사교육시장의 활성화는 결국 경제적 부를 축적한 자녀의 교육과정이나 성공의 지름길 안내로 이어졌다.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부모의 경제력이나 삶의 환경이 진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이나 경기 일부지역의 유명학원은 학원비만 해도 저소득층 가정의 월 생활비를 추월한지 오래다. 이런 사교육에 의한 교육의 불균형이 팽배한 상태에서 보편적 가정에서 상위권 대학진학의 꿈은 요원하기만 한 상태다. 계급사회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이런 상황의 고착화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묵시적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셋째 표현의 자유 문제다. 겸손과 배려가 기본이었던 과거 우리 삶 속에서 개인적 의사표현은 조심스럽고 많은 생각을 한 후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나의 표현으로 인해 상대방이나 내 주위 또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숙고가 기본이었다. 자녀의 수가 예닐곱이 보편적이던 시대에서 이젠 한 자녀 아니면 두 자녀인 시대로의 변화는 개인적으로 강한 성향의 세대를 만들어냈다. 강하고 개성 있는 의사표현을 하는 어린아이에게 과거에는 ‘되바라졌다’는 질책을 했다면 요즘시대에서는 ‘크게 될 재목’으로 여기는 풍토다. 이렇다보니 요즘 사회의 의사표현 방식이 과감하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자기의 입장에서만의 요구를 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결국 현실에서는 내 입장과 상황보다는 내가 낼 목소리의 크기나 정도가 내 위치를 정한다는 착각 속에 머무르게 되었다. 소통의 부재 책임이 내가 아닌 상대에게 있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불합리하고 잘못됐다고 나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남의 불행쯤은 아무런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다. 잘잘못 따지는 것이 직업 중 가장 상위 직업이 되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정치인인 상황에서 더 이상의 겸손과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수도 있다는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현재 기성세대의 반성과 자성을 통한 뼈를 깎는 고통의 감수가 있지 않는 한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우리나라의 고유한 덕목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더 이상 극과 극으로 비춰지는 행태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우고 보듬어주는 사회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마지막 기회가 우리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