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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임 경 미 홍성읍 오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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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임 경 미 홍성읍 오관리
  • 홍성신문
  • 승인 2020.05.3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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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와 12개의 오리알

요즘 시골 여기저기에서는 모심기가 한창입니다. 이앙기가 착착착 쉴새없이 돌아가고있어요.
친정 부모님이 지으시던 논이 있는데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가까이 사는 애들 아빠가 농사를 돕고있지요 다행히 시댁 아주버님이 한우와 농사를 지으셔 모내기와 추수를 해마다 해주세요. 물론 남편도 틈틈이 아주버님의 농사일을 거들어요.
엊그제 토요일에 그 논에 모내기를 했답니다. 햇님도 너무 뜨겁지 않고 바람도 살랑살랑 모심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어요. 저는 새참으로 시원한 물과 맥주 바나나 참외 등을 논으로 가져갔어요. 형님도 나와계셨구요.
아주버님은 논 저 아래쪽에 오리알이 있으니 가서 가져오라고 하셨지요. 형님과 저는 천천히 논둑을 따라 풀 속을 찾았어요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서요. 그런데 끝까지 가봐도 안 보이더라구요. 이상하다 어디 있는거지, 아주버님이 잘못 보신걸까?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푸드득하며 새 한마리가 날아갔어요, 우린 깜짝 놀랐어요.

순간 아, 그쪽에 오리알들이 있겠구나!맞아요. 새가 날아간 그 자리에는 동그란, 달걀보다 큰 하얀 오리알이 12개나 들어있었답니다. 신기했어요.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새 둥지 안에 알들이 총총 모여 있었어요. 그런데 형님과 저는 귀한 알들의 사진을 딱 한 장만 찍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얼른 발길을 돌렸어요. 네 둥지안에 있는 오리알에는 손도 대지 않았어요.
크고 탐스런 알을 집으로 가져가겠다는 마음보다는, 알들을 숨죽이며 지키고 있었을 어미새가, 점점 가까이 오는 형님과 나의 발자국 소리에 얼마나 노심초사 긴장하고 불안해 했을까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들을 떼놓고 푸드득 날아가는 어미새 맘이 어땠을까요.
모내기가 끝났다고 엄마한테 카톡을 보냈어요. 엄마는 인공와우 수술로 아직 대화를 잘 못하세요. 전화는 더더욱 어렵고요. 그러나 문자나 카톡은 자유롭게 하시지요.

모내기 올해도 아주버님이 잘 심어주셨다구요. 그리고 논 옆에 있는 오리알 보았다는 얘기를 사진과 함께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엄마 곧 답장이 왔어요.

"응, 알이 커"

그런데 알 가져오면 어미가 불쌍해 나는 안 가져왔는데 딴사람이 가져갔어. 엄마 지금 82세. 알 가져가면 어미새가 불쌍하다는 문장에 어쩜 엄마가 저를 울리시네요. 읽자마자 왜 이리 눈물이 날까요.
나도 불쌍해 하는걸 역시 울 엄마도 느끼시는구나 하는 공감 때문일까요. 아니면 머리가 하얀 나이드신 분들도 그런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 감동일까요.

어릴적 집에서 기르던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몸집도 커지고 이제 집에서는 더 이상 키우지를 못하니 개장수가 와서 가져가던 날이 생각나요. 아빠는 그날 아침 출근을 하시면서 엄마에게 당부하셨어요. 강아지들 가져갈 때 어미는 저쪽에서 가두어 가져가는 모습 보이지 말게하라구요.
엄마가 논 옆에서 오리알을 본건 아빠 퇴직후 두분이서 행복한 농사일을 할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 아빠도 분명 오리알들을 보셨을 거예요. 언제나 정있고 순수함이 많으셨던 우리 부모님들입니다. 두 분은 보시면서 그냥 놔두자고, 아니, 지나가는 남들의 눈에 새 둥지가 더 안 보이도록 주위 풀들을 만져주셨을거 같아요.
저도 곧 카톡에 답장을요.
“그래요. 알 가져오면 어미새가 너무 불쌍해요. 그래서 우리도 오리알을 보기만 하고 가져오지 않았어요.”
모내기 며칠후 엄마를 보면서 오리알 얘기를 꺼냈어요.
“엄마! 혹시 엊그제 모내기때 본 그 오리가?” 몇 년전에 엄마랑 아빠가 농사지을 때 보았던 그 새일까? 하구요. 울엄마 말씀하시네요.

“모르지, 그 새끼일수도…”
6년 전 그때 엄마가 오리알 가져오지 않으심에… 난 그런 우리 엄마가 좋습니다.
울엄마도 엊그제 본 오리알에 욕심내지 않은 저를 예쁘다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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