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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미소와 함께한 고즈넉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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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미소와 함께한 고즈넉한 마을
  • 홍성신문
  • 승인 2020.05.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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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읍 소향리 소향2리 - 마을 둘러보기

하늘이 맑고 높은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사이좋은 엄경자, 황선화 씨가 선희네 밭으로 들깨를 베러 갔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다. 마을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에게 선희네 밭이 어디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그렇게 몇 명의 사람을 지나치니 밀짚모자를 쓴 임택수 씨가 선희네 밭은 저기라며 안내해 주었다. 낫을 갈고 있던 엄경자, 황선화 씨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냐며 호탕하게 웃는다. 낫을 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곱게 간 낫으로 들깨를 스윽 스윽 베어간다. 꼿꼿하게 서 있던 들깨가 순식간에 눕는다.

10월 말이 되니 마을 이곳저곳에서 들깨를 터느라 분주하다. 같은 들깨를 털어도 사용하는 장비는 제각각이다. 서언순 씨는 허리가 아파 도리깨질을 못해 곧은 나뭇가지 세 개를 꺾어다 서 씨 맞춤 장비를 만들었다. 깔아두면 검불만 위에 남고 들깨 알만 밑으로 떨어진다는 파란 망도 바닥에 깔았다. 이숙자 씨는 도리깨를 이용해 힘차게 깨를 턴다. 탁탁 도리깨질을 할 때마다 들깨 알이 사방으로 터져 나온다.

이납자 씨가 하우스 안에서 김장 때 사용할 쪽파를 다듬고 있다. 토실토실한 쪽파 알뿌리들만 골라 잔뿌리를 자른 뒤 노란 컨테이너 박스에 담는다. 이제 나이가 들어 농사일을 줄이고 싶지만 타고난 부지런함 때문일까, 밭에 작물을 심지 않고 놀리는 것은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부지런함 덕에 올해도 잘 여문 쪽파로 맛있는 김치를 담글 것이다.

기척도 없이 가만가만 마늘을 심고 있어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윤명천 노인회장이 집 앞 밭에 마늘을 심고 있다. 허허 웃는 모습이 햇살처럼 따스하다.

손문 씨의 고구마 밭에서 서해자, 이숙자, 이옥순 씨

손문 씨네 고구마 밭 앞에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자기네 집 고구마는 개갈 안 나는데 손 문 씨네 고구마는 크고 예삐서 종자용으로 구매하러 왔다는 서해자, 이숙자 씨. 손문 씨가 심은 고구마는 꿀밤고구마로 잘생긴 만큼 맛도 좋단다.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에 서해자, 이숙자 씨가 바로 양손에 고구마를 들고 포즈를 잡는다. 브이를 하고 활짝 웃는 이옥순 씨다.

항상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선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던 오보부 씨가 오늘은 손에 낫을 들고 열심히 들깨를 베고 있다. 농사가 잘 되었나 물으니 속상한 마음을 슬쩍 내비친다. 꽃 필 무렵 태풍이 와서 꽃이 많이 피지 못해 깨알이 반 밖에 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힘차게 낫질해 지난날의 노고를 감사히 거둔다.

같이 살면 닮는다고 했던가. 웃는 모습이 똑닮은 김기선, 최영예 부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단감을 따 줄 터이니 가져가라 한다. 최 씨가 사다리를 번쩍 들고 오자 김 씨가 사다리에 올라 야무지게 감나무 가지를 꺾는다. 행여 흔들릴까 단단하게 사다리를 잡고 있는 최 씨의 손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김순옥 씨를 따라 밭 구경에 나섰다. 밭으로 가는 길목에 신영화 씨와 일손을 거들러 온 김순옥 씨의 동생 김추한 씨가 선풍기 앞에서 들깨를 까불고 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앞에서 들깨를 화르륵 부으면 티끌은 날아가고 들깨만 바닥에 떨어진다. 김순옥 씨는 팥과 쥐눈이콩을 거둔다. 옆에 있는 생강 잎이 예쁘다 하니 쑥 뽑아서 생강이 얼마나 여물었는지 보여준다. 통통하게 여문 생강이 빛을 받아 빛난다.

손님이 왔으니 대접해야 한다며 달큰한 배를 내어주었다. 배를 먹는데 갑자기 수숫대를 반으로 꺾어 한 손에 쥐더니 나락을 훑기 시작했다. 서언순 씨의 손짓에 나락이 알알이 훑어 진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요런 건 처음 보지 않냐며 곰살맞게 웃는다. 메벼를 심은 논에 찹쌀이 먹고 싶어 찰벼를 조금 심었는데, 벼 바심을 하며 메벼랑 탈곡을 같이 하면 섞여서 곤란하니 따로 베어 손으로 훑는 거란다. 마침 짚단을 얻으러 온 이윤옥 씨도 자리에 앉아 구경하기 시작했다. 동네사람 둘이 모이니 옛이야기 보따리가 펼쳐진다. 새끼 꼬는 법이며 나래 엮는 법을 척척 보여준다. 지붕 위에얹던 용두쇠 만드는 법은 세월이 흘러 잊어버렸지만 아버지와 같이 만들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쌀을 씻고 국을 끓이고, 큼지막한 도마 위에 푸성귀 얹어 썩썩 썰어낸다. 다가오는 점심시간에 황선화 부녀회장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마을회관 부엌 밖에서는 김순옥 씨가 자가 재배한 팥 까기가 한창이다. 오늘은 잘 씻은 쌀 위에 검은 팥, 붉은 팥을 골고루 얹어 밥을 안칠 예정이다. 일꾼이 여럿이다 보니 그 많던 팥꼬투리들이 순식간에 까진다. 이제 다함께 맛있는 밥을 먹을 차례다.

[출처] 홍성읍 소향리 소향2리 - 마을 둘러보기조사, 글 남지현, 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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