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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은 눈 먼 돈"…기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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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은 눈 먼 돈"…기준이 없다
  • 민웅기 기자
  • 승인 2020.05.25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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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집행·관리체계 개선요구 거세
사업자 자격 논란…공무원 재량, 잣대
의회 행감 격론 예고…특단대책 주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지원사업 관리체계 전반에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성군은 지난 6일 3억5000만원의 국비와 지방비가 보조되는 2020년 문화재청 보조사업 ‘생생문화재 사업’을 수행할 보조사업자를 공모를 통해 선정, 발표했다. 그러나 공모 신청 자격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본지 1703호 2020년 5월 18일자 1면 기사 참조)

당시 공모는 참여할 수 있는 단체나 법인의 자격을 ‘1년 이내에 문화재 관련 활동 실적’으로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자격에 대한 세부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지역, 수행한 사업의 예산 규모 제한, 증명서 발급처 인정기준 등이 없었다. 기준 없는 기준이 제시된 셈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실적인정 기준은 담당 공무원의 재량이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과 ‘문화재청 국고보조금 운영관리지침’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조사업자를 선정할 경우 재무안정성, 자부담 능력, 사업능력, 사업관리체계의 적정성 등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기준치 없이 담당 공무원의 눈썰미에 의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공모의 보조사업자로 선정된 A 단체가 유일한 실적으로 제시한 사업은 매헌윤봉길 월진회가 지난해 6000만원을 보조받아 진행한 생생문화재 사업 중의 한 프로그램인 ‘윤봉길, 평화를 노래하다’이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준비, 운영에 참여했다는 ‘용역 이행 실적 증명서’를 월진회로부터 발급받았다. 3억5000만원의 보조사업 수행 능력을 6000만원 짜리 사업 전부도 아닌 일부 프로그램 참여 실적만으로 가능하다고 인정한 셈이다. 특히 민간단체 발급 증명서의 인정 여부를 떠나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해당 실적증명서의 세 군데에는 ‘2019년 6월 21일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계약 기간과 사업 참여기간은 5월 18일~6월 30일’이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실제 이 행사는 9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최종 취소됐다.

결과적으로 이 증명서가 허위 사실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A 단체의 사무국장은 “단순한 오기”라고 답했다.

‘단체 소재지와 대표자의 주민등록지’ 자격도 논란을 키운다. 공고문에 따르면 신청 단체나 법인은 공고일 이전 1년 이상 홍성군에 등록돼 있어야 한다. 또 비영리 단체, 법인의 사업자등록증인 ‘고유번호증(세무서 발급)’을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고유번호증 발급 날짜를 기준해 1년 이상 단체와 단체 대표자의 주소지가 홍성군에 등록돼 있어야 한다는 게 지역 문화계의 해석이다.

A 단체는 지난해 11월 11일 홍성세무서에서 고유번호증을 신규로 발급받았다. 문화계 해석대로라면 1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청 자격이 없다. 그런데 홍성군 문화관광과는 보다 폭넓게 인정했다.

A 단체의 대표가 지난해 1월에 고유번호증의 소재지를 임차했다는 부동산 계약서와 같은 달 받은 ‘인준장’을 근거로 신청자격에 부합한 것으로 판단했다. 자격을 심사한 게 아니라 자격을 미리 인정해 주고, 가능한 이유를 찾아 보완해 주는 ‘맞춤식’ 심사라는 불만이 제기되는 이유다.  또한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A 단체의 보조사업자 공모 신청서에는단체의 전화와 팩스 번호가 041-338-0000으로 예산군 국번이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체 창립연도는 2018년으로기록됐다.

홍성군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은 정황도 포착된다. 홍성군 공고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령 등에 의한 징계로 제재(사업배제)를 받아 사업의 지원에 부적격한 단체 또는 법인(구성원 포함)’은 신청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홍성군의 생생문화재 사업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A 단체와 함께 이번 공모에 접수한 B 단체가 보조사업자로 지정돼 운영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돌연 올해부터 보조사업자 선정을 공모로 변경했다. 군은 이에 대해 B 단체가 문화재청으로부터 회계처리와 관련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조사업자 지정에 결격 사유가 있어 공모로 전환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단체는 신청자격을 인정받아 선정심의위원회에서 A 단체, 또 다른 신청 단체와 함께 심사를 받았다.

군은 B단체가 수년 동안 생생문화재를 기획하고 운영해온 기여도와 함께 보조사업자 지정에서 제외돼 이미 페널티(불이익)를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결격사유가 있어 보조사업자로 지정하지 못했는데, 다시 공모 자격을 인정했다는 이상한 논리가 만들어진다.

홍성군의회도 이번 논란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이다. 홍성군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제기된다.

이병희 의원이 지난 21일 홍성군의회 제268회 임시회 문화관광과 추가경정 예산안 청취 자리에서 “보조금을 교부하지 말고, 재검토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의원은 “가장 기본적인 자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기철 의원도 “지난해 (홍성군)의회에서 보조금 사용 정산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보조사업자 선정도 기준 매뉴얼 수립 등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은미 군의원도 “6월 행정사무감사에서 주요하게 다룰 것”이라며 “보조금 사업에 대한 관리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계의 한 관계자는 “비단 이 사업만 그렇겠느냐” 며 “나랏돈은 눈 먼 돈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또 “행정기관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한 의회도 절반 이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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