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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부응하는 변호사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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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부응하는 변호사 될 터
  • 김영찬 기자
  • 승인 2020.05.10 14: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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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인 │임 아 름 변호사

홀홀단신으로 미국으로 떠났던 어린 소녀가 성장해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제 9회 변호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임아름 씨 이야기이다. 그녀는 홍성에서 폐차장을 운영하는 임운택, 박춘화 부부의 장녀로 유학을 결정한 것은 홍주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그녀의 미국 유학은 본인이 직접 결정한 일이다. 임아름 씨는 “ebs에서 조기유학에 대한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거기 사촌오빠들이 나왔습니다. 거기서 사는 게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도 가고 싶다고 결심했죠”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린 아이를 이국 땅에 혼자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부모님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처음부터 변호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미국 유학 도중 아버지의 사업에 위기가 닥치면서다. 아버지가 거래하던 콜롬비아 바이어에 큰 사기를 당했다.

“정부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어요. 변호사 수임료에도 많은 돈을썼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했어요. 당시 억대의 손해를 보는 바람에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집에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또 있었다. 다른 유학생이 그렇듯 그녀도 비자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캐나다에서 비자를 재발급 받는 과정에서 불법이민을 의심받아 추방당할 뻔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법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변호사가 되기로 진로를 결정한 후 미시건대학교 엔하버 캠퍼스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미국 전역에서 인재들이 몰리는 명문대학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변호사를 꿈꾸는 학생들은 정치, 외교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임아름 씨는 쟁쟁한 수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졸업논문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논문을 쓰는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웠지만 모국어가 아닌 그녀에게 현지인에 비해 부족한 영어실력 등 모든 것이 불리했다. 하지만 이를 노력으로 극복했다. 논문을 쓰는 도중 응급실에 실려갔을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미국에서 수재들과 경쟁한 그녀지만 한국에서의 공부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미국식 제도에 익숙한 그녀에게 암기 위주의 한국식 시스템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한문으로 된 법전을 읽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노력으로 극복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은 이뤘지만 어떤 분야에서 일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임아름 씨는 “소송 쪽은 변호사의 핵심적인 일이라서 끌리긴 하는데 강점인 영어를 살리려면 상사 중재나 자문 쪽이 경쟁력이 있는 거 같기도 해서 아직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 중입니다”고 말했다.

진로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인생의 목표는 뚜렷하다. 유학을 떠나던 당시 일기장에 쓰면서 다짐했던 ‘좋은 사람이 되어 돌아오자’는 말은 잊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지역의 여러 분들께 도움을 받은게 큰 힘이 됐습니다. 그래서 홍성에서 산 날은 많지는 않지만 이 곳이 고향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받은 격려와 사랑에 부끄럽지 않은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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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짱 2020-05-18 20:53:03
홍성의 자랑 임아름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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