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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향교 은행나무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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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향교 은행나무의 사랑법
  • 홍성신문
  • 승인 2020.05.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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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⑥

                                                                         김정헌 내포구비문학연구소 소장

역사적으로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던 고을에는 대부분 향교(鄕校)가 전해온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했던 국립교육기관이다. 지금도 홍성, 결성, 예산, 대흥, 덕산에는 향교가 전해오며 그 지역의 정신적인 구심 역할을 하고 있다.
향교 앞에는 대개 오래된 은행나무가 한두 그루씩 서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 단을 설치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상징성 때문이다. ‘행단(杏壇)’이라는 말도 이와 같은 유래에서 탄생되었다.
‘행단(杏壇)’은 학문을 배워 익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므로, 향교나 학교를 행단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우리고장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에는 유서 깊은 대흥향교가 있다. 대흥향교 앞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서있다. 대략 600여 년 전에 심은 나무라고 한다. 아마도 대흥향교가 세워질 무렵에 심었던 은행나무일 것으로 추측된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는데, 수나무여서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대흥향교 은행나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온다.어느날 밤에 마을사람이 은행나무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한밤중이고 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한데 소복한 여인이 앞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사람은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소복한 여인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여인은 은행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주변을 몇 바퀴 돌더니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정신을 차리고 여인을 찾아보았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마을사람은 무서움을 참으면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날이 새자마자 지난밤 얘기를 마을사람들에게 전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소복한 여인의 정체를 알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한동안 소복한 여인의 얘기는 소문으로 떠돌다가 잠잠해졌다.
계절이 바뀌고 한겨울이 되면서 난데없이 무서운 전염병이 나돌았다. 마을사람들은 그때서야 지난 가을에 은행나무 앞을 맴돌던 소복한 여인이 떠올랐다.
“아마도 소복한 여인은 은행나무에 깃든 신령일 거야. 이 은행나무에 정성껏 제사지내고 마을을 지켜달라고 빌어봅시다.”

마을사람들은 은행나무가 수나무이므로 ‘향장군’이라 이름 지었다. 마을사람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추렴하여 제물을 차려놓고 향장군 앞에서 정성껏 제를 지냈다.
그 후로 마을에는 기적 같은 일이 생겨났다. 이 마을은 신기하게 한사람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모두 무사했다. 이웃 마을들은 하루에도 몇 명씩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 마을만 향장군 덕분으로 화를 면하게 되었다.

은행나무 가지에서 자라는 느티나무 모습

육이오 한국전쟁 때도 마을은 모두 무사했다. 마을이 모든 액운을 피해가는 것은 향장군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이 마을의 향장군제는 현재까지도 매년 전통적으로 지내오고 있다.
대흥향교 은행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것 못지않게, 또다른 얘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옛날부터 은행나무 중간 원줄기와 가지 사이에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다. 80세가 넘은 어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이므로, 적어도 100여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느티나무는 땅위 흙속에 뿌리를 내린 것 못지않게, 은행나무 몸속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튼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고목이 된 은행나무보다도 더욱 건강하게 자라며 어른 나무가 되었다.
마을에서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있어서 연인이나 부부를 상징하는 사랑나무로 통한다. 하지만 이곳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매우 특이한 부모와 자식 같은 연리지라고 볼 수 있다.

대흥향교 은행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것 못지않게 또 다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 한쪽을 느티나무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며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대흥향교 은행나무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점점 사랑이 메말라 간다는 요즘에, 아낌없이 내려주는 대흥향교 은행나무의 사랑법을 배워볼 일이다.

(참고자료 : 충청남도 전설집 하권 ‘예산군편’,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회,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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