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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읍 소향리 소향2리 - 마을 톺아보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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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읍 소향리 소향2리 - 마을 톺아보기 ②
  • 홍성신문
  • 승인 2020.05.0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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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변화하고 나아가는 마을

서언순 : 이 동네는 산을 개간한 곳이라 곡식이 잘 되질 않았어. 보리를 심어도 안 되고 호밀만 심었어.

1958년 무렵 미군 구호물자 지원이 끊어졌고, 사람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땅은 척박했고, 장사를 하기에는 자본이 많지 않아 어려웠다.

소향2리 대표 소득 작물이던 땅콩도 당시 생계를 위한 노력 중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경 동네에 살던 장기용 씨가 이득신 씨에게 땅콩 재배를 함께 시도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개간한 땅에 적합한 작물이길 바라며, 포복종 보다는 비교적 재배가 쉬운 직립종을 선택해 시작했고 결과는 좋았다. 이후 소문을 듣고 종자와 재배 방법을 얻으러 오는 사람이 점점 증가했다. 그렇게 땅콩은 소향2리 소득 작물로 자리 잡게 됐다.

당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면산이나 백월산에는 나무가 너무 없어서 멀리서 보면 빨간 벌거숭이 산이었다고 한다. 국가에서 산에 나무 심기가 시작됐고 10년 정도 진행됐다. 산림조합에서 주관했으며 동네 사람들은 품값을 벌기 위해 일을 하러 갔다. 30장이 넘는 멧장(잔디)을 머리에 이고 산을 올라갔다. 호우에 쓸려 내려가기 쉬운 비탈진 부분은 계단식으로 깎아 멧장을 입힌 뒤 나무를 심었고 평평한 곳은 그대로 나무를 심었다. 당시 스무 살이 채 넘지 않았던 엄경자 씨는 “아이고. 우덜 애덜 때네. 그러니께 펫장을 한 번에38장씩 이고 다녔지. 산이 빨갰는데 우덜이 이고 다니메 나무 심어서 이 면산 다 만든거여”라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마을의 모습도 계속해서 변화했다. 60세대, 100세대가 형성될 때는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며 살았으나, 1958년경부터 저마다의 이유로마을을 떠났다. 홍성 원주민들은 집값이 저렴한 소향2리로이주하기 시작했고, 피난민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웠다.

 

이득신 : 이북 사람들 80프로, 원주민 20프로, 그렇게가 마을 형성한 사람들 비율이여. 그런데 이북 사람들이 얼마 있다가 서로 자기네들끼리 연락을 하게 되니까 누구는 어디서 살고, 누구는 홍성서 살고, 누구는 어디서 산다고 서로 연락이 닿더라고. 여기는 생활 터전이 비좁고 여러 가지로 어려우니까 어디가 살기 좋다 그러면서 고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가족 친지를 찾아서 합쳐서 이동하더라고. 그러니깐 피난 온 사람들은 꾸준히 줄고, 그 집 터전에 100평, 200평이라도 터전이잖어. 거기에 여기 원주민들이 들어와서 살게 되고 그랬지. 사실상 지금은 이북서 온 사람들이 몇 세대 안 남았어.


주우업 : 정부에서 이곳에 피난민들 정착을 시켰는데 내가 왔을 땐 이북 사람들 장사해먹으려고 다 떠나고 6분의 1정도 남았을까? 그 대신 홍성 원주민들, 가난한 사람들이그 자리에 다 들어왔더라고.

평양 출신 주우업 씨는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군에서 예편해 흥성으로 내려왔다. 홍성읍내 장터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을 통해 소향2리에 살만한 초가집이 있고, 피난민들도 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68년이 되는 해 4반에 있던 초가집으로 들어와 살았고, 19기년에 현재 거주하는 집으로 이사했다.

1972년 주 씨는 마을 어르신들의 권유로 이장을 맡기 시작해, 80세가 되는 해까지 통틀어 37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향2리 이장 일을 봤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시간이 많았다.

자연에 있는 뚝새풀을 훑거나 소나무 껍질을 벗겨다가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쉬영버들이나 삐리풀 등 풀떼기를 뜯어먹고 익혀 먹기도 했다. 고구마 조금으로 하루종일 끼니를 해결하는 일도 많았다.

그런 시절 주 씨는 가난하고 배고픔에 굶주리는 영세민들을 발굴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등 마을 주민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또 1973년부터는 제대로 나 있는 마을길이 없던 마을에 길을 닦기 위해 주도하며 이끌어서 많은 길을 닦았다. 오랜 시간 이장을 맡으면서 마을을 지키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힘써왔다.

2017년부터 이장을 맡고 있는 이범웅 씨는 마을 만들기 사업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주민들의 화합과 함께 주민들의 생각과 뜻이 담긴 마을 가꾸기를 해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됐다.

2019년 9월 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와 함께한 현장포럼을 시작으로 마을의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어갈 마을 사업을 계획 중이다. 그 동안은 늘 익숙하기만 한 삶의 터전으로 마을에 대한 시간의 변화, 현재의 모습, 소향2리만의 강점, 약점을 비롯해 마을의 특징을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많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마을 가꾸기 단계에 들어서기 전, 현장포럼이라는 기회를 통해서 마을주민들이 모여 마을 가꾸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게 됐다. 총 여섯 번의 포럼이 진행되었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참여자도, 적극적으로으로 의견을 내는 주민도 점점 늘어나면서 마을 가꾸기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런 과정 속에서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시간도 가지고 있다. 이범웅 이장은 다른 마을에서 소향2리로 견학 올 수 있는, 그런 본보기가 되는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척박한 산고랑 땅이 논과 밭으로, 아무도 살지 않던 곳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마을로, 벌거숭이 민둥산이 가을이면 단풍이 다채롭게 물드는 나무들로 채워졌다. 어떤 어려움에도 지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마을회관을 꽉 채운 주민들의 즐거운 대화소리가 들리는 소향2리는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 정 많고 사랑이 넘치는 소향2리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 본다.

조사, 글 남지현, 주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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