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축사, 예술ㆍ문화 산실로 다시 살다
상태바
축사, 예술ㆍ문화 산실로 다시 살다
  • 홍성신문
  • 승인 2020.05.04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 ① - 이응노의집 창작스튜디오 (상)

                                                                             신나라(‘이응노의집’ 학예연구사)

고앙이응노생가기념관 창작스튜디오가 개관 3주년을 맞으며 예술인의 꿈의 산실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특히 홍성의 큰 경제원인 축산업의 상징인 축사를 창작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축사 창작스튜디오’의 태동과 성장, 변화와 함께 4기 입주작가들의 활동계획을 신나라 이응노의집 학예사의 두 차례 글로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에 올해 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2020년 4월 21일 창작스튜디오 앞부분에 ‘파사드’를 세운 것. ‘파사드(façade)’ 는 건축물의 정면을 일컫는 말로, 일반적인 건축 시공에서는 그다지 별나지 않다. 하지만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 파사드는 공공의 고민으로 탄생한 결과라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고민의 시작은 창작스튜디오 건립과 연관된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는 고암 이응노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2011년) 이후, 문화특화지역 이응노마을 조성사업(2015~2017)과 관련해 2017년 5월에 개관했다. 이응노의 집에서는 이에 따라 주변의 사용하지 않는 축사를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로 탈바꿈 시켰다. 사용하지 않은 축사의 모습과 공사 후 창작스튜디오로 변화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는 2017년 6월, 첫 입주 작가 레지던시 운영을 시작으로, 올해 3월 네 번째 입주작가를 맞이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소프트웨어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1.0에서 4.0으로 나날이 성장하는데 비해, 하드웨어인 외관은 “멀리서 봤을 때, 예술가의 창작스튜디오로 보이지 않고 여전히 축사로 보인다”는 점에서, 외부의 관점에서 꾸준한 논란의 주제로 다뤄져 왔다. 또 일부 사람들은 “예술가의 창작 터가 축사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지붕의 파란 색을 다른 색으로 칠하거나, 지붕에 커다란 간판을 다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축사 이미지 버려야 할까? 지켜야 할까?
이응노의 집 학예연구사에게 건축물 시설 변경은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창작스튜디오 외관이 축사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라’는 당면 과제 안에서 축사의 ‘장소특정성’을 잃지 않아야 했으니 말이다.

2016년 사용하지 않는 축사를 창작 터로 삼은 것은, 당시 도시재생 정책과 맞물린 농촌 문화재생의 필요성과 공공성을 실행하고자 했던 제도권의 선택이었다. 지역의 역사문화 자산을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심폐소생 시키려는 도시재생은 2000년대 초반의 주요 경향이었다. 또 유휴공간의 건축물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예술 공간으로 탄생시키는 일은 미술계에서도 하나의 트렌드였다.

국내 사례로는 서울 창동레지던시(마트),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쓰레기매립장), 금천예술공장(공장) 등이 있으며, 해외 사례로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화력발전소),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PS1(공립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테이트모던이 재생을 통해 어떻게 예술 공간으로 바뀌었는지, 원형을 살린 건물 재생 요소가 또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는 또 다른 기회에 다루고자 한다.
그렇다면 ‘장소특정성’을 왜 가져가야 할까? 기존의 건축물 원형을 그대로 활용하는 일은,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를 축사 원형으로 남기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기능적으로도 중요하다.

홍성군 축산업이 창출하는 경제 가치는 다른 농업 생산액의 4배에 이를 정도로 지역경제의 근간을 이룬다. 아울러 홍성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역정체성에 기여하는 요소가 된다. 지역의 자연풍경 속에 파란 지붕과 노란 천막의 축사는 상징적인 지역이미지를 형성하니 말이다.

하지만 축사 이미지가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도시화 과정에서 양질의 고급화를 향한 움직임은 축산 악취 문제와 맞물려 축사는 천덕꾸러기로 떨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축사를 ‘예술 가치를 창출하고 문화 상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이는 축산업 차원을 넘어 지역 이미지 쇄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축사 원형을 보존 활용하는 일은 기능면에서도 예술창작 공간에 유용하다. 왜냐하면, 환기에 적합한 건축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축사는 가축 배설물로 인해 습기가 차고 악취가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지니는데, 이는 물감안료의 원재료인 파라핀 냄새나 조각·설치작품 제작에서 생기는 부스러기와 분진 등의 문제를 해소시킨다.

대림미술관(서울) 파사드

축사를 창작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한 정상철 건축가는 “레지던시(=창작스튜디오)를 계획함에 있어서, 높은 층고가 확보 되어 있는 우사의 구조적 특징은 예술가의 다양한작업 활동에 유리한 점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축사는 외벽이 모두 열려 있어 필요한 프로그램에 따라 야외작업을할 수 있는 공간구성이 용이하다”고 보았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은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고 말했다. 이것은 곧 건축사에 뿌리 깊은 바우하우스 정신이다. 축사 형태를 지닌 창작스튜디오는 그대로 축사 건축 기능을 따른다.


상상해 보라. 먼 훗날, 미래 산업의 발달에 따라 홍성의 모든 축사가 사라진다 해도, 형태와 기능면에서 살아남은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는 지역의 역사문화를 증언하듯 말해 주리라.
그렇기에 축사의 지붕 색을 바꾸거나, 지붕 위 큰 간판으로 축사 외관을 훼손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창작스튜디오 파사드 제작
앞서 거론된 지붕 색 교체와 지붕의 큰 간판 설치 등은 아예 배제하고 본격적으로 이에 대체할 방안을 고민했다. 창작스튜디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예술가가 사는 공간이자 창작활동을 하는 곳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홍성=축산’이라는 강한 이미지가 주는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기대하는 창작공간의 예술적 이미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창작스튜디오 정면에 예술성이 돋보여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파사드’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전통 건축의 파사드는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파사드처럼 섬세한 입체세공으로 장식한 고전 형식을 띈다. 하지만 현대에는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예술시설들이 앞 다투어 기관의 정체성과 특정한 인상을 풍기는 데 활용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사용해 장식미에 실용미를 더한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는 기존 축사 원형에 이질적인 재료 사용을 피하기 위해 실제 축사 천막과 각관을 사용했다. 그 결과, 2020년 4월 21일에 가로 4m, 높이 3.8m의 파사드 2개를 제작했고, 가로 레일을 달아 좌우 이동이 가능한 파사드로 구현했다.

창작스튜디오 김제원 작가는 야외 홍보무대가 생기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파사드가 어떤 효과를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김 작가는 “부모님이 창작스튜디오에 오신 적이 있는데, 처음엔 이곳을 못 찾으셨어요”라고 웃으며, “마찬가지로 차량을 이용하는 일반 사람들도 이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잘 모를 것 같아요. 그런데 파사드를 활용해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보인다면, 이곳이 ‘예술적인 무언가를 하는 곳이구나’하고 알아차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향후 파사드를 활용해 드로잉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