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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이 있기에 삶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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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이 있기에 삶이 즐겁다
  • 김영찬 기자
  • 승인 2020.05.04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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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인_충남타일 조서현 대표

홍성읍 금당리에 위치한 충남타일 사무실에서 조서현 씨(58)을 만났다. 그는 건축타일일만 42년째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건축일에 뛰어든 것은 17살 때의 일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원서를 접수하지 못했다.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홍성고에 있는 관악부에 꼭 들어가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가 고등학교 갈 시기하고 형님이 대학 갈 시기가 겹쳤죠. 근데 형이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어요” 결국 조서현 씨는 자신이 학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중학교 졸업식 후 열흘만에 집을 나와 강원도에서 건축타일을 배우기 시작한 게 천직이 됐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남자로 태어나서 가정형편 때문에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너무 한스러웠습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도 배우겠다는 조서현 씨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홍성고에서 방송통신고가 생긴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입학원서를 냈다.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에 강원도에서 홍성까지 하루 종일 걸려서 버스를 타고 왔다. 일요일에는 2주치 강의가 정리된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공부하고 월요일에 다시 강원도로 가는 강행군을 한 끝에 5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의 배움은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홍성에서 방위생활을 하던 중 6개월을 남기고 혜전대 원서 접수 시기가 다가왔다. 이미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었다. 더 늦으면 영영 못 갈것 같았다.

대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시험은 볼 수 있게 해 주겠다. 대신 떨어지면 일주일간 완전군장하고 연병장을 돌아야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떨어지면 일주일이 아니라 한달간 돌겠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그는 절박했던 것이다. 대학 등록할 당시 웃지못할 헤프닝도 있었다. 같이 등록하려던 아내는 돈 2만원이 없어서 등록을 못했다. “어머니가 마침 풍이 온데다 둘째까지 태어나는 바람에 어차피 등록했어도 못 다녔을 겁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이지만 당시엔 속이 많이 쓰렸을 것이다. 아내인 류선미 씨도 그 못지 않게 배움에 대한 열정이 크다. 이후 그녀는 기능대를 다니다 중퇴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현재 혜전대 호텔조리과에 막내아들과 동기로 같이 다니고 있다.

혜전대 행정학과에 무사히 합격했지만 대학 다니는 것도 녹록하진 않았다. 방통고 시절처럼 치열하게 다녔다.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그대로 대학으로 직행했다. 강의를 듣고 레포트를 쓰고 나면 두 시가 훌쩍 넘었다. 방통고 시절부터 8년을 줄곧 그렇게 살았다. 배움에 대한 의지는 그가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이후에도 채워지지 않는 배움의 갈증은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채웠다. 생업인 타일관련해서 타일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같이 응시했던 50명 중 유일하게 그 혼자만 합격했다. 군대에서 이발한 경력으로 제대하자 마자 이용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이밖에 굴삭기, 지게차 등 기회가 되면 틈틈이 도전했다. 작년에는 건축방수 자격증을땄고 다음엔 드론자격증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생업을 꾸리면서도 15년간 마을 이장도 했다. 지금도 건축일로 바쁘지만 논농사도 200마지기나 짓고 있다. 그간의 어려움을 의지로 극복하고 지금 그가 짓는 미소는 인생의 전리품 같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힘들었지만 가지지 못하고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역경을 스스로 헤쳐나온 게 인생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제는 어떤 어려움도 무서울 게 없어요. 요즘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배울 수 있는 길은 전보다 훨씬 넓어요. 젊은 분들도 꿈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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