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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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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숨겨진 이야기 ⑤
  • 홍성신문
  • 승인 2020.04.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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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역사적인 사건과 용봉산 석굴

우리고장 용봉산은 불교문화의 보물창고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또한 다양한 기암괴석이 많아서 남한의 작은 금강산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2019년에는 용봉산 빈절골에 위치한 폐사지(상하리 사지)를 발굴조사 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곳 폐사지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존재했던 사찰이며 금동불입상이 출토되어 절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이 밝혀졌다. 폐사지 입구 암벽에는 유형문화제 제250호인 마애보살입상이 새겨져 있어서 예사로운 사찰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석굴 안쪽에서 내려다 산 아래 전경

용봉산은 불교유적 못지않게, 정상 부근 암벽에 위치한 석굴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석굴은 옛날 고려시대 홍성에서 일어났던 반란사건과 관련한 역사의 현장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역사에서 무신들의 집권 기간이 100여 년 정도 된다. 이 시기에 무신정권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은 최충헌(崔忠獻, 1149~1219)이었다. 최충헌은 문무의 전권을 장악하고 마음대로 왕을 폐위시키는 등 권력을 독점했던 인물이다.

최충헌의 말년에 병이 중하여 위독해지자, 두 아들의 권력다툼이 표면화 되었다. 큰아들 최우와 동생 최향의 권력다툼이었다. 결국 큰아들 최우가 권력을 잡았고, 동생 최향(崔珦, 1168~1230)은 이곳 홍주로 유배되었다.

최향은 원래 힘도 세고 성격도 포악한 인물이었다. 10년 동안 홍주성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집안의 세력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최향은 정권다툼에서 밀린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며 민폐를 끼쳤다. 자신이 거처하는 집을 크게 짓고 주변의 불량한 자들을 불러 모아 근처 백성들을 귀찮게 했다. 이런 소문을 듣고 최우와 지방 관리들이 수차에 걸쳐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권고했으나 듣지 않고 횡포를 일삼았다.

최향이 숨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석굴 모습

고려사의 기록에는, “최향은 홍주로 귀양 간 후 항상 불평을 품고 있으면서 자택 공사를 크게 벌여놓고 불의한 짓을 많이 하였으며, 주민들을 침해하였으므로 온 경내가 다 고초를 겪었다. 최우와 홍주의 수령이 금지하였으나 듣지 않았다”라고 했다.

홍주로 유배된 최향은 1230년(고종 17) 8월에 부랑인들을 집에 모이게 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홍주부사와 판관 등을 살해하고 북과 징을 치며 떠들어 대므로 성안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최향은 다른 지역에 유배되었던 측근과 인근에 격문을 보내어 군사를 일으켜 반란에 참여할 것을 청했다. 또한 하인들을 시켜서 홍주관아 창고를 열고 곡식을 꺼내어 반란군들에게 나눠주었다.

최향의 반란소식은 중앙에 전해졌고, 곧바로 관군이 동원되어 토벌작전이 벌어졌다. 최향은 수세에 몰리자 수하들을 데리고 북산(용봉산)으로 몸을 피했다. 최향을 쫓던 군사들이 용봉산을 에워싸고 수색하므로, 함께 따라갔던 반란무리들은 모두 도망하여 흩어졌다.

사람들이 최향에게 “당신이 우리 고을의 수령을 죽이고 또 이처럼 무리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킨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최향은 “형인 최우가 자신을 천대하고 홍주의 수령까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므로 화가 나서 난리를 부린 것이다”고 대답했다.

최향은 산속에 혼자만 남아 갈 곳이 없으므로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아마도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바위에서 떨어진 몸이 멀쩡했으므로 주변 석굴 속으로 들어가 목을 찌르고 거짓으로 죽은 체 하고 있었다. 최향을 쫓던 군사들이 석굴 속에서 최향을 발견하고 사로잡아 홍주옥에 가두었다.

홍주에 유배되었던 최향의 반란으로 홍주 인근 수령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반란에 가담하거나 조금이라도 협조했던, 결성·대흥·예산 등 일곱 고을 현감들과 무고한 홍주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홍주사람으로 최향과 어울렸던 자들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던 것이다. 중앙의 정치권력 투쟁으로 인하여 홍주지역의 무고한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던 사건이다.

용봉산은 산 전체가 바위로 뒤덮였다고 할 정도로 여기저기 기암괴석이 많다. 최향이 용봉산의 기암괴석 중에 어느 바위에서 떨어졌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용봉산 정상 9부 능선쯤에 깎아지른 듯한 높은 암벽이 있다. 암벽 하단부에 대여섯 명이 숨을 만한 석굴이 하나 있다. 이 석굴은 최근에 발굴된 빈절골 상하리사지에서20여 미터 쯤 위쪽이다.

석굴 안에는 바위에서 솟아나오는 물도 있고 주변을 조망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 석굴은 최향이 최후에 몸을 숨기며 은거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 석굴이 빈절골 상하리 사지와 함께 용봉산의 또 다른역사 유적으로 관심을 끌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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