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면 유송리 유송마을 - 톺아보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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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면 유송리 유송마을 - 톺아보기 ①
  • 홍성신문
  • 승인 2020.03.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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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옥과 마주하다 1

오늘날 농촌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주택은 그 유형이 다양하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농촌의 주택은 초가와 기와를 올렸던 전통 흙집에 슬레이트 지붕이 올려진 모습이거나 1960년대 이후 지어진 근대 한옥, 1970년대 국가적으로 공급되고 건설된 새마을 주택, 1990년경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에 따라 새롭게 지어지거나 개축된 양옥, 귀농·귀촌인의 전원주택 등 그 유형이 다양하다. 농촌에는 아직 옛 주택 유형이 많이 남아 있고 여전히 그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문화 그리고 격변의 시기를 지나온 기억을 지니고 있다. 유송마을에는 1960년 이후 지어진 근대 한옥이 여러 채 있다.

우리나라 한옥은 지역마다 구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북부지역은 추위를 막기 위해 ㄴ자 형태나 ㅁ자 형태로, 남부지역은 더위를 막기 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부지방은 집이 ㄴ자 형태고 마루가 좁은 편이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과 마루의 조합이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바닥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나무로 만든 마루에서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게 만들었다. 유송마을 근대 한옥은 모두 ㄴ자 형태다.

충남 보령에서 스물여섯 살에 시집온 1946년생 노영희 씨 가옥에는 아들 유성조 씨와 며느리 장수빈 씨, 손주까지 여섯 식구가 살고 있다. 남편 유병윤 씨는 작고했다.

노영희 씨 가옥은 1971년 건축이 완공된 상태였으나 노 씨가 시집올 당시에는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대략 48년 전에 지은 집이다. 시아버지 고(故 유재기 옹이 건축을 진두지휘했다.

한옥을 지은 목수는 예산군 합덕면 목수로 유재기 옹과 친척 관계였다. 완공된 한옥에는 증조 시할아버지, 증조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 3명과 시동생 2명, 그리고 노영희, 유병윤 부부까지 총 열세 식구, 4대가 살았다.

건축 당시 바뀐 시대와 생활양식에 따라 양옥집의 요소들이 도입됐고 건축 후 48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살고 있는 가족들이 살기 편하도록 고치거나 개조한 부분이 많다. 노영희 씨의 아들 부부는 기회가 되면 집을 다시 짓고 살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노영희 씨 집은 안채를 가운데 두고 왼편으로 헛간채가, 오른편으로 대문간채가 있다. 대문간채에는 안채로 들어오는 대문과 일꾼들이 묶던 행랑방이 있다. 굳이 대문간채 대문을 통하지 않더라도 훤히 열린 공간으로 안채의 뒷문에 당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문간채를 통해 집과 외부의 경계를 만들었다. 행랑채에도 아궁이가 있어 방바닥을 뜨끈하게 데울 수 있었다. 아궁이는 부뚜막 없이 바닥에 설치하는 함실아궁이다. 함실아궁이는 불길이 그냥 곧게 고래로 들어가게 만든 아궁이를 말한다.

안채는 처마 밑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는 섀시로 문을 해 달았다. 문을 달아 실내 공간이 된 앞마당의 일부에 비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빨래를 말리거나 세간살이들을 보관할 수 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으로 아랫방에 딸린 쪽마루가 나오고 외부로 통하는 부엌문과 안채로 들어가는 미닫이 출입문이 보인다. 오른쪽 사랑방 창문 밑으로는 함실아궁이가 보이는데 이는 사랑방 구들을 데우던 곳이다. 가마솥이 걸려 있어 부엌만으로 부족했던 대식구의 취사를 마당에서도 일부 담당할 수 있었다.

대청 앞의 미닫이 출입문 역시 건축 당시 만들어졌다. 겨울 난방이 중요한 중북부 지방의 대청에는 종종 문이 설치되기도 했는데 노영희 씨 가옥 출입문은 대청 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대청에 오르는 부분까지 실내가 되도록 설치되어 현관문의 역할을 한다.

대문을 경계로 집 안과 밖을 구분하던 주거 전통과 달라진 생활양식이 모두 반영된 모습이다. 특히 겹집의 형태로 내부 복도를 통해 방이나 욕실로 이동할 수 있다. 대청 천장은 건축 당시 반자를 설치했다. 반자 천장은 전통 한옥에서도 방의 보온과 미관을 위해 설치하던 것이나 노 씨 가옥은 대청까지 반자 천장을 달았다. 때문에 천장의 서까래는 다락에 올라서야 확인할 수 있다.

1944년생 유석분 씨가 거주하는 가옥은 ㄴ자 형태의 한옥이다.

서부면에서 스물두 살에 은하면 장곡리 장촌마을로 시집을 갔던 유 씨는 장촌마을에 살다가 교통 편의를 위해 20여 년 전 남편과 함께 유송마을 한옥으로 이사 왔다. 한옥이 지어질 당시 유 씨는 새댁이었다.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지어진 지 19년 된 집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고, 거주한 지는 20년이 넘었으니 족히 40여 년 전 지어진 집으로 추정된다. 작고한 건축주는 최연동 옹으로 유송마을 토박이다. 최연동 옹의 딸이 은하면 대율리에 살고 있고 퇴직 후 부모님이 지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 한옥의 형태를유지할지 증·개축 계획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안채에는 우측부터 사랑방, 가운데방, 웃방, 다락과 부엌, 대청, 뒤주와 광이 있다. 현재 유 씨는 부엌을 리모델링하고 광을 욕실로 리모델링해서 사용하고 있다. 독특하게 대청이 방처럼 독립적으로 있는데 미닫이문이 달려있다.

한옥의 전면을 따라 지붕을 길게 덧대고 확장된 외부 공간에 섀시로 출입문을 만들어 실내공간처럼 이용하고 있다. 눈과비를 비롯한 습을 피하고 농산물을 건조하거나 손질하는데 유용하다.

[출처] 은하면 유송리 유송마을 - 사람 사는 이야기조사, 글 이은정, 주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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