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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비상행동 특별기고 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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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비상행동 특별기고 ⑯
  • 홍성신문
  • 승인 2020.02.0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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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와 생존자 그리고 농민수당

                                                                                                     장정우 (농민)

“땅은 가치 있는 이들과 어디에도 쓸모없는 이들을 밝혀낸다”
- 장 피에르 베르낭의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1971)

“돈이 최고지, 돈 많이 벌어라” 새해 인사로 친구에게 들은 덕담이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라는 정체성은 우리의 첫 번째 자아다.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콘텐츠 중 하나는 ‘먹방’이다. 음식을 사먹는 것을 넘어 누군가 먹는 모습을 소비하는 우리가 있다. 십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것들이 상품이 되는 세상이다.

소비자의 정 반대편에 소멸 위기에 놓인 ‘생존자’가 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존 버거는 ‘생존만을 위해 헌신하는 삶’ 을 사는 자족적인 농민을 ‘생존자’라고 정의한다. 생존자로서 농민의 특징은 무엇일까? 직접 소비하기 위해 생산 활동을 한다는 것이 현대인과의 차이점이자 그들을 ‘생존자’ 라고 칭하는 이유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들의 생산활동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유기적인 순환 관계를 지켜야만 생계가 유지되며, 그 과정에서 매일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확인하면서 농민은 순환의 시간관을 갖게 된다. 농민은 삶과 사회를 나날이 확장되는 일직선의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역설적이게도 ‘생존자’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기후위기는 고난을 더한다. 작년에 KBS뉴스에서 남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의 소식을 다뤘다.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농경지가 바다에 잠긴 화면과 함께 방송을 탄 현지인의 목소리는 공교롭게도 농민들의 것이었다. “800여 미터 밖에 있었던 바다가 이제는 코앞까지 와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말하는 이 지면에 농민의 이야기를 계속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 무엇 하나 자급하지 못하게 된 우리는, 든든한 이웃 없이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돈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개인은 자신의 소비력만큼 안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통장을 든든하게 해주겠다는 인물에게 표를 던지고, 농업을 포기하는 대신 자동차를 더 팔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든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확장(성장)은 화석연료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와 다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풍요롭지만 독방에 머무는 개인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성장의 길에서 내려와야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순환하는 삶의 길을 보여주는 생존자 – 농민 – 가 사라지기 전에 그들을 지켜내야 한다. 이번 겨울 충청남도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농민수당이 화제였다. 그리고 1월 29일 홍성군에서도 주민 발의 농민수당 조례안이 제출되었다. 농민수당은 농민을 지키는것을 넘어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순환적삶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농민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의 순환적인 시간관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기후위기를 넘어 ‘생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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