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8:41 (금)
기후위기 비상행동 특별기고 ⑮
상태바
기후위기 비상행동 특별기고 ⑮
  • 홍성신문
  • 승인 2020.02.02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후위기와 엘리트주의

                                                              이동근 홍동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

세상의 중요한 일(?)은 누가 결정하는 게 좋을까?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잘 해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어느 사회이든지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소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조금이나마 인간의 삶에 진전이 있다고 다들 믿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러한가? 한국 사회는 左파와 右파를 가르는 고루한 논쟁만 있을 뿐, ‘上파’와 ‘下파’를 구분하는 것에는 매우 무감각하다. 좌파든 우파든 모두 다 上층인 게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어느 쪽이든 下층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 소수 엘리트가 독점한 세상의 룰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고안돼 있다. 엘리트 의식이 체화된 정치인, 경제인, 지식인, 고위관료 등 소수 上층집단이 민초를 위해 민주적인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이제야말로 대다수 下파가 직접 세상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말 민주적인’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현재 지구생태계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본다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이는 누구이며, 이를 해결할 주체는 누구인가? 지구상의 엘리트 기득권층은 기후위기의 주범이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 지구자원을 경쟁적으로 착취해 온 정책결정권자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반성은 없다. 눈앞의 이익에 기후위기는 뒷전일 뿐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중앙의 소수 엘리트들에게 문제해결을 맡기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민주적인’ ‘엘리트’는 양립 가능하지 않다. 어떤 일을 민주적으로 풀 때, 그 주인공이 엘리트가 될 수는 없다. 민주적인 사회라면 엘리트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어야 한다.

결국, 생각을 조금만 더 깊이 해본다면, 기후위기를 감지한 지역 곳곳의 수많은 민초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만이 유일한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다수 하층이 주인공이 될 때 민주사회를 이룰 수 있고, 그러한 ‘진짜 민주사회’라야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