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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4] 알베르 까뮈 - 카페인, 가을날의 엽록소와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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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4] 알베르 까뮈 - 카페인, 가을날의 엽록소와도 같은…
  • 홍성신문
  • 승인 2019.11.25 14: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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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모든 잎이 꽃으로 변하는 제2의 봄이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말이다. 까뮈에게 가을은 제2의 봄이다. 그것은 질서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자 순환이다. 피어날 때 피어나고 스러질 때 스러지는 자연의 섭리가 봄과 가을을 만들고 또한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피어날 때 피지 않고 스러질 때 스러지지 않는 모든 것들은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반역이다. 그것은 낯선 세계를 비집고 들어선 이방인과도 같다. 모두가 흑백인 세상에서 저 홀로 색깔을 가진, 낯설고도 불편한 존재가 바로 이방인인 것이다.

그것은 추방되어 마땅한 존재다. 모두가 단풍 들 때 단풍 들지 않는 낙엽송은 베어 마땅한 것이다.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는다. <지금 이 곳>의 삶이 소중한 그에겐 엄마의 죽음보다 자신의 어깨 결림이 더 중요하고 여자 친구인 마리와의 정사(情事)가 더 절박하며 이웃 청년과의 소통이 더 시급하다. 세상의 도덕률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울어 마땅하다 말하지만 그에겐 세상의도덕률 따위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탓이다. 무엇보다 그에겐 도덕률이라는 잣대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내가 슬프지 않고내가 고통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슬픔이나고통을 가장한단 말인가. 아무리 엄마의 죽음이 비보(悲報)라 해도 그것이 내 안에 슬픔이 되어 맺히지 않는다면 슬퍼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만이자 감정에 대한 사기다. 그렇게 생각한 그였기에 그는 엄마의 장례식 내내 울지 않았다.엄마의 시신 곁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피우며 무덤덤한 얼굴로 마지막을 함께 한것이다.

까뮈가 <부조리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울 수 없는 자에게 울기를 강요하는 건 명백한 부조리다.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지는 건 더더욱 가혹한 부조리다. 주인공 뫼르소는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아프리카의 해변에서 청년을 쏘아 죽인 그에겐 얼마든지 사면의 여지가 있었지만 엄마의 장례식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이 죽여 마땅한 인간으로 여론을 몰고 간 탓이다. 당시 식민지 알제리에서 프랑스인이 저지른 범죄는 얼마든 무마될 수 있었지만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고 장례 직후 정사를 나누는 등 파렴치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는 사형에 처해진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단풍 들 때 단풍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낙엽송을 베어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에게 커피는 가을날의 엽록소와도 같았다. 단풍 들 때 단풍 들지 않은 그의 삶은 커피라는 각성제가 있어 가능했다. 푸른 빛의 엽록소가 단풍으로부터 나뭇잎을 지켜내듯, 그의 삶에 커피는 부조리로부터 세상을 지켜내는 근원이자 원천이었다.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에서 연거푸 커피를 마셔댄 것도, 소설 <이방인>의 작가 까뮈가 생 제르맹의 카페를 전전한 것도 모두가 엽록소와도 같은 카페인을 필요로 한 때문이었다. 소설을 쓴 작가에게도,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세상의 도덕률을 지켜내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만인의 도덕률에 따라 타인을 흉내내며 사는 삶>이란 뫼르소에게도 까뮈에게도 목숨과도 맞바꿀 만큼 가혹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반항하기 위해 존재>했고 <고독의 크기를 통해 우주를 배워간> 그에게 커피는 부조리의 고통을 덜어줄 사색의 음료였다. 그것은 반항과 고독을 통해 얻게 될 보다 큰 세계를 열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렬한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뫼르소의 항변은 어쩌면, 단풍 들 때 단풍 들 수 없는, 언어로는 설명될 수 없는 작가 자신의 항변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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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2019-12-05 20:30:49
드라마나 소설 보기엔 부담스럽기도 요즘 마음을 채워주는 글을 읽는 이 짧은 시간이 인생의 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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