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금융시스템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화폐’와 이 본원화폐를 바탕으로 시중은행이 대출을 통해 만들어내는 ‘은행화폐’ 로 구분해서 설계돼 있다.
한국은행이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 지폐와 동전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본원화폐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은행을 통해 유통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자가 붙는 돈이 바로 은행화폐이다. 민간에서 필요로 하는 돈은 거의 대부분 금융시장을 통해 은행화폐의 형태로 시중에 공급되고 있다. 어떤 투자사업이든 이자나 배당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단기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단기수익을 좇으면서 그 사업이 초래하는 환경적 영향까지 고려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게 지금의 금융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윤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현 민간은행은 대출을 통해 이자수입을 올리면서 독점적인 은행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윤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바라보는 한,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따져 볼 여유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액 이상을 대출할 수 있는 신용창조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환경을 해치는 사업에 투자될 수 있는 돈의 양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
정확히 말하면, 은행은 들어온 예금으로 대출해주는 게 아니라, 대출을 통해서 예금화폐를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출은 다시 이자와 함께 상환된다는 기대치가 클수록 사용처를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금융패러다임의 전환을 꿈꾸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첫째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은행 대신에, 은행의 수익을 공공자산화하면서 최대한 지구환경에 해를 입히지 않는 방향으로 돈의 순환을 이끄는 지역 공공은행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얼마 전에 공공은행법이 통과되면서 공공은행의 설립기반이 마련되는 성과도 거두었다.
둘째는, 예금액보다 몇 배로 돈을 부풀려서 통화창출을 하는 민간은행의 기능을 제한하는 법적, 제도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민간은행이 자금중개기능 이상으로 지나친 대출을 할 수 없도록 한도를 두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민간은행의 난개발사업 투자는 물리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는, 재화나 서비스의 이동에 한계를 갖는 지역화폐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역화폐를 매개로 하는 지역순환경제의 활성화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동시에 지역공동체 복원에도 한 몫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화폐를 유통하는 협동조합은행이 대규모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는, 균형재정론의 통념을 벗어나서 국가 스스로 이자 없는 본원화폐를 발행하여 필요예산이 조달가능하다는 경제학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서 이러한 자금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그린뉴딜(Green New Deal)’정책 또한 함께 떠오르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국가차원이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도입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지역의 공공은행이 지역화폐를 본원화폐로 발행해서 지역환경을 살리는 예산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직면하여 인간활동의 근간이 되는 금융시스템에도 과감한 혁신의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바라며, 많은 이들이 이 변화에 동참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