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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3>빌리 조엘 -"내 커피잔 속에 위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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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3>빌리 조엘 -"내 커피잔 속에 위안이 있다"
  • 홍성신문
  • 승인 2019.11.0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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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권미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토요일 저녁 9시, 단골손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노역에 찌든 지친 몸을 이끈 채다. 그들에게 카페는 일상의 오아시스다. 거기엔 삶의 고단함을 달래줄 커피가 있고 일상의 피로를 잊게 해줄 알코올이 있으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음악이 있다. 사막과도 같은 일상의 고단함은 소나기와도 같은 <피아노 맨>의 선율에 활기를 되찾는다. 모래사막을 적시는 시원한 소나기처럼, 피아노가 주는 곱고도 맑은 선율이 일상에 지친 도시인의 삶을 촉촉이 적셔주는 것이다.

카페는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의 공간이다. 거기엔 물결처럼 출렁이는 청춘이 있고 격정의 시기를 건너온 노년이 있다. 그러기에 노인은 격정의 청춘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추억 속의 노래 한 곡 불러 달라고…. 어떻게 부르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젊었을 때 불렀던 슬프고도 달콤한 노래 한 곡 연주해 달라고...빌리 조엘의 노래 <피아노 맨>은 그렇게 탄생했다. 진토닉을 마시며 추억의 노래를 부탁한 건 격정의 시기를 건너온 초로의 노인이다. 격정의 시기를 건너온 노인에겐, 격정의 시기를 견뎌야 할 청춘들이 부럽고도 안쓰럽다. 그러기에 그는 격정의 청춘들이 불렀을 추억의 노래를, 격정의 시기에 놓인 <피아노 맨>에게 용기 내어 부탁하는 것이다. <바에 앉은 내 친구 존(John), 웃음기 없는 얼굴로 술 한 잔 권하네/담배를 태우며 농담도 하지만/ 언제나 다른 곳을 갈망하는 친구/삶에 지친 얼굴로 그는 말하네/이 곳을 벗어나면 난 영화배우가 될 테야...> 빌리 조엘에게 청춘이란, 다른 곳을 향한 한없는 치달음이다. 젊음이란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대를 향한 동경이자 탈출인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외롭고 쓸쓸하며 불안하고 고독하다.

빌리 조엘은 실제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네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열 네 살에 록밴드를 결성했고 스물네 살에 솔로로 데뷔했다. 십 대엔 복서로도 활동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비틀즈의 공연을 보며 뮤지션을 꿈꾼 그는 길고도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치며 출렁이는 청춘을 견뎌냈다. 멤버 간 불화와 상업적 실패는 헤어나기 힘든 고질적 병폐였다. 그가 만든 앨범 <피아노 맨>이 성공하기까지 그는 밴드 간 이합집산과 음반사의 홀대, 시도 때도 없는 자살 충동에 청춘을 걸어야 했다. <피아노 맨>이 성공을 거둔 스물여섯 살,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더 이상 흔들리는 청춘이 아니었다. 출렁이는 물살은 세상을 담아낼 수 없지만, 출렁임이 가라앉은 수면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낸다. 삶의 격정을 견뎌낸 그는 스물여섯 나이에 이미 세상을 담아내는 잔잔한 물살이 되어 있었다.

“내 커피잔 속에 위안이 있다.” 음악을 위해 청춘을 쏟아부은 그는 커피 한 잔조차 허투루 마시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니, 커피가 주는 위안이 있어서 그는 청춘을 온통 음악에 쏟아부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피아노 맨>을 노래했던 1973년, LA엔 스페셜티 커피의 효시라 할 피츠(Peet’s) 커피가 자리잡고 있었고 활동무대를 LA로 옮긴 그에겐 커피 한 잔이 주는 향미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이자 보상이었다. <피아노 소리는 축제가 되고 마이크에선 맥주 향이 난다>는 <피아노 맨>의 가사처럼, 현실 속 그는 피아노 음을 축제 삼고 목소리에선 커피 향이 날 만큼 무던히도 애쓴 음악가였다. 술은 고독을 잊게 하지만 커피는 고독을 가라앉힌다. 그가 커피잔에서 위안을 찾은 건, 커피야말로 격정의 청춘을 달래기에 더없이 좋은 음료임을 간파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살을 꿈꾸던 록커에서 화려한 음악인으로, 그래미상을 6번이나 수상하고 1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는 위대한 음악가로 거듭나기까지, 실패와 성공 사이 그 격정의 삶엔 수없이 많은 커피잔들의 위안이 눈물처럼 숨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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