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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7> 바바 부단 - 커피라는 물줄기로 풍경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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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7> 바바 부단 - 커피라는 물줄기로 풍경을 바꾸다
  • 홍성신문
  • 승인 2019.11.0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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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지형을 따라 흐른다. 빠르게 가든 느리게 흐르든 물은 온전히 물살에 자신을 내맡긴다. 세찬 격류라 하여 숨이 가쁜 것도, 느리다 하여 숨이 고른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의 관점일 뿐, 물은 그저 환경에 적응하며 표표히 흘러갈 뿐이다. 틈새를 열고 물꼬를 터주면 물은 언제든 풍경을 만들며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다.

커피의 흐름 또한 마찬가지다. 커피가 인류를 매혹하기까지 거기엔 완급을 조절하며 이어지던 전파의 시기가 있었다. 저수지 물처럼 고여 있던 커피가 전 세계 인류를 매혹하기까지 거기엔 틈새를 열고 물꼬를 터준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바바 부단 또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17세기 수피교 수도승이었던 그는 커피를 몰래 인도로 들여온 <인도판 문익점>이었다. 목화라는 신소재를 붓두껍에 숨겨 온 문익점처럼 바바 부단 또한 커피라는 생두를 몸에 숨겨 자신의 조국, 인도로 밀반입한 것이다. 커피나무가 예멘에서만 자라던 1600년대였다. 당시 예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에게 커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고, 세계 유일의 황금알을 지키기 위해 오스만은 필사적으로노력했다. 외부로 유출되는 생두는 불에 그을려 번식력을 없앴고 오가는 사람들은 일일이 검문해 묘목의 밀반입을 원천 봉쇄했다. 묘목을 훔치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틈새를 열고 물꼬를 트는 일이 늘 합법적일 수는 없다. 커피를 향한 바바 부단의 소망은 목숨을 걸어도 좋을 만큼 간절했고, 메카 땅을 찾는 순례 기간 동안 그는 마침내 커피 생두를 훔쳐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수피교도에게 커피는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신성한 음료였다. 그것은 이슬람 창시자 무하메드를 살린 신비의 음료였고,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구원의 음료였으며, 신을 찾아가는 의식 <수피 댄스>에 쓰일 수행의 음료였다. 커피를 대할 때면 그는 늘 메카의 카바 신전을 떠올렸다. 커피의 검은 빛은 카바 신전의 검은 돌만큼이나 신비해 보였고 커피가 가진각성 효과는 신전 곁을 지키고선 우물, <잠잠>만큼이나 영험해 보였다. 잠잠 우물을 찾으려 사막을 헤맨 하갈의 심정으로 그는 예멘 거리를 뒤져 일곱 알의 생두를 손에 넣었다. 메카에서 일곱은 신성한 숫자였다. 일곱 알의 생두를 넣고 국경을 건넌다면 신 또한 자신을 지켜주리란 믿음이 검문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주었다. 그에겐 수피교 수도승이라는 특권이 있었다. 검문이 제아무리 삼엄하다 해도 수도승의 옷까진 벗기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면 조각에 생두를 넣어 배에 둘러 묶었다. 수도승의 표식이 되어줄 겉옷을 입으니 생두를 숨긴 면 조각은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무사히 국경을 넘었고 자신의 고향 마이소르에 커피 묘목을 심었다.

그의 고향 마이소르는 커피를 재배하기에 더없이 좋은 땅이었다. 해발 1800미터의 언덕 찬드라기리는 따스한 기후에 물까지 풍부해 생두는 탈 없이 자라주었다. 그가 튼 물꼬는 생각보다 위대했다. 그렇게 자란 커피나무는 고향 마이소르의 풍경을 바꾸기 시작했고 말라바르 해안을 따라 번져가며 아프리카와 유럽에 커피를 수출하는 커피 산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커피를 숨겨온 지 70년이 지난 1670년의 일이었다. <길이 있는 곳으로 가지 말라.> 미국의 사상가에머슨의 말이다. 커피 역사는 늘 길이 없는곳으로 가 자신만의 발자국을 남기려 한 사람들에 의해 완성됐다. 바바 부단이 일곱 알의 생두로 일궈낸 건 커피나무로 뒤덮인 고향의 풍경, 그리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알리는 또 한 번의 처절한 증명이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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