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1] 마리아 테레지아 - 커피를 마시는 새로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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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1] 마리아 테레지아 - 커피를 마시는 새로운 방법
  • 홍성신문
  • 승인 2019.11.0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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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권미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운명은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 시대야말로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인 까닭이다. 인간의 삶에 시대란 계절의 오고 감과도 같다. 봄과도 같은 따스한 인생이 있는가 하면 겨울과도 같은 혹독한 인생이 있다. 봄의 따스함도, 겨울의 혹독함도 인간의 힘으로 선택할 수 없듯 시대가 주는 행 불행 또한 인간의 힘으로 선택되어지지 않는다. 계절의 오고 감을 어찌할 수 없듯 시대의 오고 감 또한 인간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시대는 혹독한 겨울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여성을 적자(嫡子)로 인정하지 않는 당대의 분위기가 그랬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녀에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왕권을 물려받아야 할 기구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카를 6세는 합스부르크 왕권을 거머쥔 절대 권력자였지만 후계자만은 가질 수 없는 불운한 운명이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카를 6세는 여성도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국사조칙>을 만들며 큰 딸 마리아를 상속자로 내세웠다. 그가 살았던 18세기, 유럽의 모든 제국들이 여성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시대의 물길을 바꾸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시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흙탕물과도 같다. 평온한 시대엔 맑은 물처럼 보이지만 시류가 변할 땐 언제든 앙금과도 같은 흙탕물을 길어 올린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삶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 카를 6세가 서거하자 왕권을 둘러싼 각축전은 흙탕물처럼 왕가를 흔들었다. 혼맥(婚脈)을 통해 형성된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를 넘어 헝가리와 로마 스페인까지 연결됐고, 내정 간섭과도 같은 그들의 의견은 어느 것 하나 가벼울 수 없는 족쇄가 되어 그녀의 삶을 옥죄었다. 그녀에겐 19살에 결혼한 남편이 있었다. 프랑스 로트룅겐 출신의 남편은 애시당초 정치와 거리를 둔 사람이었고 그녀는 16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정치적 난제들을 헤쳐나갔다. 무엇보다 신흥 강국 프로이센이 문제였다. 오스트리아 땅, 슐레지엔을 놓고 벌인 프로이센과의 전쟁은 7년이라는 막대한 시간을 끌며 그녀의 삶을 소진했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헝가리로, 러시아로 지원 요청에 나선 그녀에게 삶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자 슬픔이었다.

그녀가 커피를 가까이 한 건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커피는 곧 알코올을 의미했다. 삶의 애환을 술로라도 풀고픈 그녀에게 커피는 더없이 좋은 비밀의 음료였다. 와인을 증류해 만든 리큐르를 커피에 넣고 휘핑크림과 설탕을 얹어 만든 리큐르 커피는 공공연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마실 수 있는 그녀만의 음주 비법이었다. 오렌지껍질을 원료로 만든 오렌지 리큐르는 피로회복과 강장, 건위(健胃)에 더없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커피에 든 카페인과 어우러지며 그녀의 기분을 상승시켜 주었다. 그녀 나이 겨우 스물세 살, 삶의 방패와도 같던 아버지를 잃고, 마흔여덟에 남편을 잃은 그녀에겐 먹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즐거움이었다. 리즈와도 같던 그녀의 미모는 식욕과 허기를 맞바꾸며 살이 찌기 시작했고 감당할 수 없는 육체의 무게는 계단을 홀로 오를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삶을 압박했다. 불행 앞에 서서야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불행 앞에 서서 그녀는 마침내 인간이란 햇빛에 스러지는 이슬과도 같은 존재임을 깨달았다. 16명의 자녀 중 다섯 명을 질병으로 잃고 막내딸 마리 앙트아네트마저 프랑스 대혁명 시대, 형장의 이슬로 보내야 했기에 그녀의 삶은 더더욱 덧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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