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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면 옥계2리] 사람 사는 이야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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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면 옥계2리] 사람 사는 이야기②
  • 홍성신문
  • 승인 2019.10.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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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청년 마을조사단에서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홍성 지역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이충근, 남선희 씨 부부가 깻모를 심고 있다.
이충근, 남선희 씨 부부가 깻모를 심고 있다.

 

남 씨 부부의 즐거운 시골살이

지난 2010년 옥계2리에 귀농한 이충근, 남선희 부부가 비가 온다는 소식에 깻모를 심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인다.

남선희 씨는 전남 함양 출신으로 1977년 온 가족이 서울로 상경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남 씨는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동화 속에 나오는 궁궐이라 생각했다. 서울에 도착해 해가 어스름해진 시간, 밖으로 나간 남 씨는 서울의 맨 얼굴을 마주했다. 쓰레기가 가득하고, 집도 동화책에서 봤던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었고, 집 앞에는 연탄재가 가득 쌓여있어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그나마 아직도 도시를 떠올리면 기억하는 맛이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어묵볶음을 처음 먹어봤다. 달큰하고, 짭짤하고, 혀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운 어묵의 맛은 그야말로 맛의 신세계였다. 그뿐이었다. 도시에 대한 기억은 말이다. 도시를 탈출할 기회를 틈틈이 엿보던 남 씨는 스물세 살에 결혼하면서 미련 없이 도시를 떠났다.

강원도 인제와 강릉을 찍고, 경기도 오산에서 잠시 1년을 머무른 뒤 옥계2리에 들어왔다. 청양에 사는 아는 분의 소개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서 들어왔다. 나머지는 모두 도지를 내고 농사를 짓는다.

“도시는 너무 각박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시골이 좋다. 이 마을에는 텃세도 없고, 주민들도 다 잘해주고, 이제는 나이도 들어가니 여기서 뼈를 묻을 생각이다.”

2014년부터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남 씨는 자타 공인 밥순이다. 마을 공동행사만도 마을총회, 어머니날 행사, 정월대보름 행사, 백씨 노인 제사 등 5개다. 올해는 건강체조교실 충남대회를 준비하느라 일주일에 두 번씩 마을회관에 모여 체조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는 일이 부녀회원들의 몫이다.

“아직 젊으니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어머니들이 많이 도와주신다. 어머니날이나 마을총회 때는 축협시범목장에서 20~40만 원 정도를 희사한다. 요즘 같은 때는 내가집에서 반찬을 해 가기도 하고, 어머니들이 집에서 키우신채소들을 많이 가져오시니 돈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

특유의 친화력을 가진 남 씨는 마을 이곳저곳에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시골에 오자마자 땅이나 집부터 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시골의 물정을 알아야 적응도 쉽다. 시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텃밭이나 지으며 살자는 마음으로 와서는 어렵다. 동네에 정착해서도 주민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흐름에 따라가지 않는 것도 안 된다. 내 주관만 뚜렷하다면적응해서 사는데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귀농해 농사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남편 이충근 씨는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 나는 대로 남 씨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

 

“누가 등 떠밀어서 시골에 온 것이 아니니 비록 적응을 못해 다시 나가더라도 시골이 올 곳이 못 된다는 식의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늘 밝은 웃음으로 사람들에게 한 걸음 먼저 다가가는 남 씨 부부의 즐거운 시골살이다.


 


 

“소 잡아라~”

족히 100년이 넘은 정진군 씨 집 외양간.
족히 100년이 넘은 정진군 씨 집 외양간.

 

2010년부터 별티농장을 운영하는 정진군 씨 집에는 소 65마리가 100년이 넘은 외양간과 축사를 지키고 있다.

1946년생 부인 강창수 씨와 함께 거주하는 집은 강 씨가 시집을 오기 전부터 정 씨가 거주하던 집이다.

외양간과 아궁이가 지금까지 정 씨의 집을 버티는 든든한 아랫목이다. 외양간에는 얼마 전 새끼를 낳은 암소가 새끼 두 마리와 함께 있다.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뒤 흙으로 마감한 외양간은 예전부터 아궁이나 부엌 근처에 만들었다. 농업사회에서 소나 말을 먹이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정 씨의 외양간 역시 아궁이 바로 옆에 위치한다. 소 여물을 만들어 먹여야 했기 때문이다. 외양간의 바닥은 흙바닥이며, 이 위에 짚 등을 깔아 더러워지면 거름이나 땔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정진군 씨 집 왼쪽에 자리한 외양간 뒤에는 아궁이가 있어 소 여물을 만들기 쉽게 되어 있는 구조다.
정진군 씨 집 왼쪽에 자리한 외양간 뒤에는 아궁이가 있어 소 여물을 만들기 쉽게 되어 있는 구조다.

 

외양간 이외에도 축사를 지어 소들을 기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축사 문이 허술한 틈을 타 소 한 마리가 산으로 향한 것이다.

정 씨가 막대기 하나를 들고 조심조심 소 뒤를 쫓는다. 강 씨 역시 지팡이를 들고 서서 소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큰 소리를 내면 소가 놀라 도망갈 수 있으니 살금살금 움직여야 한다.

산으로 더 올라가기 전 정 씨가 능숙한 솜씨로 축사로 유인한다. 그런데 정작 소가 축사를 피해 축사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있다.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정 씨가 축사 뒤를 막고, 강 씨가 축사 앞을 지키고 섰다. 축사 입구로 오던 소가 갑자기 축사 사이 틈으로 머리만 들이밀며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축사를 달아난 소를 잡기 위해 정진군 씨가 막대기를 들고 소를 몰고 있다.
축사를 달아난 소를 잡기 위해 정진군 씨가 막대기를 들고 소를 몰고 있다.

 

정 씨와 강 씨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실랑이를 한 지 30여 분이나 되었을까.
소가 큰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느릿느릿 들어가고야 만다.

정 씨가 막대기로 축사를 탕탕 내리치며 문단속을 한다. 도망간 소를 잡느라 부산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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