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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0] 브람스 - 커피라는 이름의 ‘삶의 연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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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0] 브람스 - 커피라는 이름의 ‘삶의 연료’
  • 홍성신문
  • 승인 2019.10.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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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권미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삶에도 연료가 필요하다. 삶을 나아가게 할 의지 혹은 열정이다. 세상과 맞서 싸울 삶의 에너지는 저 홀로 생성되지 않는다. 오래된 동물의 화석이 연료를 만들듯, 삶의 연료 또한 내면의 갖가지 퇴적물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결핍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상처이며 누군가에게 그것은 자신을 향한 절망이거나 분노 혹은 정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온 화석이 연료가 되어 세상을 밝히듯, 내면을 거슬러 온 퇴적물 또한 삶의 연료가 되어 운명을 밝혀주는 것이다.

브람스의 삶에 연료는 타인이었다. 그의 삶에 타인은 넘어야 할 산이자 운명을 찾게 해줄 삶의 이정표였다. 결핍을 숙명처럼 안고 산 그였다. 콘트라베이스 주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독일 어느 소설가의 표현처럼 <최후의 쓰레기와도 같은 존재>였고 그것은 그의 내상이 되어 퇴적물처럼 고스란히 그의 내면에 쌓였다. 투박한 음역에 볼품없는 모양새의 콘트라베이스와도 같던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팽개치듯 산 모질고도 거친 사람이었다. 세 들어 살던 집의 17년 연상의 딸과 결혼한 그는 항구 주변 술집을 전전하며 호른 연주로 돈을 벌었고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들마저 생계에 동원할 만큼 무능하고도 세속적이었다. 술집에서 폴카를 치며 브람스는 음악을 배웠고 인형극에 쓸 피아노를 반주하며 그는 음악을 익혔다. 정규 교육은 꿈조차 꿀 수 없는 그에게 술집과 극장, 뒷골목은 온몸으로 음악을 익히는, 어둡지만 달콤한 배움의 산실이었다.

야전(野戰)에 익숙한 자에게 삶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대결이다. 무엇보다 그 시대엔 모든 작곡가들이 넘어야 할 베토벤이라는 산이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는 당대 작곡가들에겐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세계였고 이를 뛰어넘을 교향곡 창작은 당대 작곡가들에게 주어진 숙명의 과제와도 같았다. 리스트와 바그너가 <교향시>라는 <미래>로 베토벤을 에둘러 갔다면, 브람스는 <현악 6중주>라는 <복고>로 베토벤을 에둘러 갔다. 고통을 넘어 환희로 가는 베토벤과 달리, 고통을 넘어 또 하나의 어두움으로 가는 <무거움>은 마침내 브람스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케 했다. 그가 20년에 걸쳐 작곡한 교향곡 1번이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란 찬사를 받은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에게 커피는 타인과의 등거리를 유지해줄 자기 확증의 음료였다. 그에겐 클라라라는 이름의 <봉인된 여인>이 있었다. 열고자 했으나 열 수 없었고 이르고자 했으나 이를 수 없었던 불멸의 여인 클라라는 그에겐 스승과도 같은 슈만의 아내이자 다다를 수 없는 삶의 꽃이었다. 오디션을 치르듯 자신의 자작곡을 초연하며만난 슈만이었기에 슈만의 부인 클라라는애시당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연인이 되기까지 브람스는 수많은 삶의 질곡들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던졌을 때, 그리하여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불구의 몸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채 묵묵히 클라라 곁을 지켜냈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그는 의식을 치르듯 커피를 내리며 자신의삶을 확인했다. 일어나자마자 내린 한 잔의 커피는, 복잡한 삶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숭고한 의식이었다. 커피를 내리며그는 세상이 어떠하든 자신의 마음만은지켜내리라 다짐했고 그러한 결기가 세속의 사랑을 불멸의 사랑으로 승화하며 아름다운 음악으로 결실케 한 것이다. 그가작곡한 현악 6중주곡이 <브람스의 눈물>이란 세간의 찬사를 받는 것도, <투박한껍질 안에 든 가장 달콤한 열매>라는 클라라의 평가를 받은 것도 모두가 세상과는다르게 살려 한,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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