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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 순교자들의 삶과 역사적 가치에 대한 심포지엄 발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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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 순교자들의 삶과 역사적 가치에 대한 심포지엄 발제 정리>
  • 이번영 시민기자
  • 승인 2019.10.21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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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는 피의 땅, 순교의 땅, 신앙의 땅”

김성태 솔뫼성지 신부
김성태 솔뫼성지 신부

▶발제1 - 김성태  솔뫼성지 신부

“충청도에는 홍주를 비롯해 해미, 청주, 공주, 충주 5명의 영장이 있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영장은 반역자들을 취급하는 기관이다. 1780년대 초에서 1791년까지 홍주 관찰사가 정조 임금에 보낸 서신들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얼마나 극성스러운 박해가 일어났는지 헤아려볼 수 있다. 1801년 2월 14일 노상추가 광천 등 관할 기관에 보낸 지침서에도 이런 실상이 나와 있다.

홍낙민 형제가 쓴 내용을 보면 사학자(천주교 신자)는 가난한 이웃을 돕고 투전이나 놀이를 하지 않으며 농담과 욕설도 안 하고 산다는 등 이야기들이 많다. 역설적이게도 박해자들이 쓴 기록을 통해 오늘의 신자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김대건도 그런 이야기를 모았으며 다블뤼 주교는 홍주 신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프랑스에 자세하게 전했다.

홍주는 순교자의 수와 분위기 등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천주교 순교자는 약 2000명인데 그중 59%가 충청지역에서 순교했고 그중 절반이 홍주지역이다. 서울은 전체의 15% 뿐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내포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포는 한국 천주교의 초석이다. 피의 땅, 순교의 당, 신앙의 땅이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해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성지와 지역 함께 개발 아시아 손꼽혀”

차기진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차기진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발제2 - 차기진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지난해 중국, 말레이시아 등 여러나라 사절단과 함께 홍주성지를 7회 정도 왔었다.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바람직한 성지라는 데 입을 모았다, 보통 천주교성지와 지역사회가 분리 개발 되는데 홍성은 지역과 함께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6개 순교터가 350m 안에 모두 연결돼 있다. 213명이 순교한 감옥 자리에 법원 검찰이 있었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대부분의 성지 터와 순교자 수 등은 교회사와 공식적인 정부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전승에 의해 성지를 만들고 그에 맞춰 기록을 찾기 때문에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데 홍주는 처음부터 지역 학자들과 같이 기록을 찾으며 성역화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과 대부분 일치한다. 홍주의 순교방법은 참수, 옥사, 장사, 아사, 동사, 생매장 등 순교의 모든 방법이 사용됐다. 전국 170개 순교지 중 유일하다.
홍주순교자는 공식적인 기록이 212명이다. 보통 기록의 3배 내지 4배로 보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홍주성지 순교자는 700명 내지 800명이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홍주성지 복자는 원시장,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황일광 4명이며 홍주성지 하느님의 종 3명이 추가로 심사중이다. 홍성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천주교에서는 엄청난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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