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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6> 클리외 - 희생으로 일궈낸 커피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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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6> 클리외 - 희생으로 일궈낸 커피의 황금시대
  • 홍성신문
  • 승인 2019.09.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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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재능은 머릿속에 기억되지만 배려는 가슴에 새겨진다. 배려야말로 누군가의 삶을 토닥여줄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의 삶이 꺼져갈 때 그 삶에 빛이 되어주는 건 누군가의 따스한 사랑이다. 사막길과도 같은인생길을 걷는 자에게 사랑은,험준한 세파와 맞서 싸울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프랑스 대령 클리외가 추앙받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커피 전파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배려는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고 숭고하다. 그에게 커피는,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 그 자체였다. 그랬기에 그는 남들이 커피 묘목을 훔쳐 갈 때 정식으로 커피 묘목을 얻어냈고 남들이 자기 몫의 양식을 챙길 때 그는 자기 몫의양식을 고스란히 커피 묘목에 이양했다. 작가에게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가 문학이듯 그에겐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가커피였던 것이다. 커피 재배가 영토를 넓혀가던 18세기였다.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섬에 복무하던 클리외에게 커피나무는 꿈에서라도 갖고 싶은 진기한 보물이었다. 예멘에서 첫 재배된 커피나무는 900년 가까운 금단의 시기를 넘겨 유럽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바바 부단이란 인도 승려가 커피 씨앗을숨겨가 자국에 심었고 네덜란드 상인 브뤼케 또한 예멘에서 커피 묘목을 훔쳐 암스테르담 식물원에 심었다.

더 늦기 전에 커피나무를 구해야 했다. 당시 그가 살던 마르티니크섬은 예기치 않은 홍수로 코코아 농장을 모두 잃은 뒤였고 프랑스 본토 또한 두 차례 닥친 기근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커피나무를 구할 수만 있다면 프랑스도 마르티니크섬도 모두 경제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커피나무를 구하는 일이었다. 당시 파리 왕립 식물원엔 네덜란드가 증여한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었지만 그걸 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버지 뒤를 이어 즉위한 루이 15세는 고집불통의 소년이었고 그를 알현하려는 클리외의 꿈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궁중 의사 시라크를 매파 삼아 얻은 묘목은 곧 죽어 그는 종자를 다시 심어 묘목을 키워내야 했다.

프랑스 낭트를 떠나 마르티니크에 이르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호시탐탐 묘목을 노리는 승객 때문에, 때로는 배를 집어삼킬 듯한 폭풍우와 해적선 때문에 그는 단 한 순간도 눈 붙일 수 없는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티며 그는 커피나무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여행 막바지 자신이 마셔야 할 물까지도 모두 커피 묘목에 주었다는 일화는 커피야말로 <목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였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되어 커피 역사에 남아 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은 클리외의 삶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커피 묘목에 쏟은 그의 정성은 헛되지 않아, 커피를 재배한 지 50년 만에 마르티니크섬은 2천여 만 커피나무를 가진 커피 강국으로 성장했고, 페루와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카리브해 연안국에 커피를 전하는 커피 묘목의 메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연탄길> 작가 이철환이 자서전과도 같은 자신의 책 속에 남긴 글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건 나보다먼저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 때문일 것이다.영국의 시인 예이츠는 자신이 쓴 시 <The Tower>에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생애중 가장 귀한 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면 과연무엇을 줄 것인가?> 목숨과도 같은 물까지이양하며 커피나무를 지켜낸 클리외. 그의고향, 노르망디가 기념관까지 세우며 그를기리는 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사랑과 배려, 그리고 숭고한 희생을 드려 커피를 지켜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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