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 아들로 호적 올리고 69년 살아…김동규 친부 김숙제 세브란스 의사 추석쇠러 왔다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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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 아들로 호적 올리고 69년 살아…김동규 친부 김숙제 세브란스 의사 추석쇠러 왔다 희생
  • 이번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7.0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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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한국전쟁기 희생된 민간인들<3>
▲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하던 중 추석을 쇠러 고향에 왔다 희생당한 고 김숙제씨

7월 13일 용봉산 평화공원에서 여는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희생자 홍성지역 16차 합동추모제는 여느해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2015년 광천읍 담산리 폐금광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 21구를 발견한 후 DNA 조사 결과 2명의 유족을 찾았기 때문이다. 두 명이 어떤 사람이며 왜 희생됐는가 2회에 걸쳐 추적해본다. <편집자 주>

광천읍 내죽리 김동규(71세)씨는 호적에 큰아버지 아들로 올려놓고 살며 동네에서 빨갱이 자식이란 말을 듣기 힘들어 고향을 떠나 중동지역 노동자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오는 등 한국전쟁의 연좌제 피해자다. 김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북받치는 서러움을 눈물로 회상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김동규씨와 김씨의 사촌 형 김동오(88세)씨의 증언을 정리해 본다.

김동규의 친 아버지는 호적에 그의 삼촌으로 등재돼 있는 김숙제다. 1927년에 광천읍 내죽리에서 태어난 김숙제는 덕명초등학교를 졸업(26회로 추정)하고 서울로 올라가 연희전문학교(세브란스 의과학과 연세대학 공동 전신)을 졸업, 서울역 건너편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다. 1950년 스물다섯 살 때 6·25전쟁이 터졌다. 피난을 가지 못하고 근무하다 9월 26일 추석을 맞아 고향 광천에 내려와 며칠 묶었다. 당시 홍성에서는 9월 27~28일 인민군이 퇴각을 준비하는 동안 인민군과 지방 좌익들이 우익 인사들을 대량 학살하고 떠났다. 29일 새벽 방위군이 광천을 시작으로 홍성군을 탈환하자 이번에는 지방 우익들이 치안대를 조직하여 좌익 활동하던 사람들을 찾아내 즉결 처형하거나 지서에 가뒀다. 김숙제도 같은 동네 윤모씨에 의해 좌익으로 밀고돼 광천지서에 갇혔다. 이웃 마을사람까지 6명이 함께 끌려갔다. 10월 7일 경찰이 홍성에 들어온 다음날 광천 지서에 갇혀있던 그들 30여명은 광천읍 담산리 중담에서 총살당한 후 폐금광에 묻혔다.

고향에 추석 세러 내려온 김숙제는 서울에서 보도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혐의였다. 그런데 그가 서울에서 실제 보도연맹에 가입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진술자들은 김숙제는 그의 고모부 때문에 걸려든 연좌제(범인과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로 우리나라 헌법에서 금지돼 있다)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의 고모부 서석희가 청주 출신인데 인민군 점령기 노동당 홍성지역 서기장으로 광천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했다는 것이다.

김숙제 아버지는 아들이 결혼 2년 만에 남자 아이를 하나 낳고 학살당하자 아이를 큰 아들이 낳은 것으로 호적에 올리고 며느리는 홍북으로 재가시켰다. 그래서 김숙제 아들 김동규는 큰아버지 둘째 아들로 입적됐는데 생년월일은 두 살이 늦고 생일도 사촌과 바뀌었다. 그리고 김숙제는 학살당한 게 아니라 집에서 죽은 것으로 호적정리를 했다. 김동규는 재가한 친모가 어느날 사진 한 장을 주며 “이 사진이 실제 너의 아버지다. 보고싶을 때 보라”는 말을 듣고 지금까지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조부모와 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동규는 호적은 큰 아버지 아들로 돼 있으나 실제 누구 아들인지 지역에서는 다 알고 있었다. 학교에 가나 마을에서나 ‘빨갱이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국내에서는 할 일이 너무 제한 돼 있는 김동규는 벽돌, 미장 토목건축 기술을 배워 쿠웨이트, 싱가폴 등 외
국 근로자로 나갔다. 삼우주택에 입사, 외국으로 나가는 데도 신원조회가 안 나와 우여곡절을 겪었다.

‘빨갱이 자식’ 딱지를 달고 살며 서러움도 많이 당했다. 중동지역으로 일하러 가기 위해 생모를 찾아가 재정보증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을 때 가장 서러웠다고 회상한다. 연좌제가 만연한 나라에서 삶이 얼마나 힘들고 불안하면 친자식을외면할까 생각됐기 때문이라는 것.

69년 동안 한 많은 사연을 가슴에 묻고 서울에 살고있는 김동규씨는 광천 담산리 폐금광 유해발굴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달려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신고했다. DNA 검사결과 부친의 유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같은 사연들은 김동규씨 한 사람 뿐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가해자가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국가권력이라는 점과 폭력적 단어가 자손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점이다. 전쟁 7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는 억울한 국민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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