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8:39 (목)
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4> 슈테판 츠바이크 - 카페, 그 하나 됨의 세상을 위하여
상태바
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4> 슈테판 츠바이크 - 카페, 그 하나 됨의 세상을 위하여
  • 홍성신문
  • 승인 2019.06.28 0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 미 림커피비평가협회충남본부장

1942년 2월, 한 남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예순한 살. 27년 연하의 아내와 함께였다. 사인(死因)은 약물 과다복용. 치사량의 수면제 복용을 통한 동반 자살이었다. 그는 철학자이자 시인이었고 극작가이자 전기(傳記) 작가였다.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독일과 영국, 미국, 브라질을 전전한 그에게, 자살을 감행할 사유는 없어 보였다. 그는 유복한집안의 아들이었고 훌륭한 동료들을 가졌으며 사상가들의 평전을 쓸 만큼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에겐 삶의 정수(精髓)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 세상의 온갖 군상들을 글로 풀어 쓰며 그는 언어의 마술사가 되어갔다. 그에겐 철학자 니체도,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모두가 거울로 삼아야 할 인생의 스승이었다. 철학자는 철학자대로, 바람둥이는 바람둥이대로, 그 나름의 철학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이름은 슈테판 츠바이크. 188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세계 대전을 두 차례나 치른 작가이자 철학자였다. 전쟁을 치르며 그는 세계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법을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세상일에 신경쓰지 마라. 네 안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은구원하라. 너 자신을 잠그라. 너 자신을 세우라.> 사상가 ‘몽테뉴’ 평전에서 말했듯, 그는자기 자신을 잠근 채 세상일에 무관심하려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에게 삶이란, <지금여기>를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었다. 과거에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얽매이지 않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이 순간, 미지의 세계에서 툭, 떨어진 하나의 별똥별처럼 그렇게 현재의 삶을 살아내는 일이 그에겐 삶의 과제이자 철학이었다.

그런 그에게 브라질은 현실 속의 낙원이었다. 히틀러가 독일을 점령한 후 극우 세력이 서유럽을 휩쓸던 때였다. 나치 세력의 자장(磁場)을 피해 런던으로, 미국으로 떠돌던 그에게 브라질은 꿈에 그리던 하나 됨의 세계였다. 그것은 커피를 매개로 형성된 카페와도 같았다.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에 있던 카페 <슈페롤>은 <싼 값의 커피 한 잔으로 누구와도 가까이할수 있는> 하나 됨의 세상이었다. 카페 <슈페롤>에선 누가 더 낫고 못하고가 문제되지 않았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가스실에 끌려가는 일 또한 없었다. 거기선 오직 삶과 예술만이 문제될 뿐이었다.

<하나의 예술적 사건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한 사람이 무언가를 놓치면 다른 사람이 덧붙여 설명해주는, 논리와 관용과 포용이 넘쳐나던> 카페 슈페롤의 분위기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 브라질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브라질에선 인종도 계급도 피부색도 문제되지 않았다. 종교와 신념이 다른데도 원만히 살아가는 그 나라에서 그는 비로소 유대인이라는 낙인을 벗고 작가로 살아갈 수 있었다.

<내 모든 친구에게 인사를 보낸다. 원컨데 친구들은 이 길고 어둔 밤을 지나 동이 트는 아침을 볼 수 있기를... 조급한 이 사람은 먼저 떠난다. 자유 의지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지키려 했던 세상은 그러나, 히틀러가 유럽을 점령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언어의 연금술사였던 그에겐 짓밟힌 조국의 언어가 무엇보다 서글펐다. 자살 직전 쓴 편지에서 밝혔듯, 조국의 언어를 빼앗긴 그에겐 <스스로의 삶을 세울 여력이 없었다.> 조국의 언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게 해줄 사고의 젖줄>이었다. 젖줄을 잃은 인간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었다. 커피 한 잔을 놓고 삶의 젖줄을 놓쳐버린 그를 생각한다. 타는 목마름은 비단 누적된 가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