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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길, 길도 우리의 자산이고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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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길, 길도 우리의 자산이고 문화다
  • 홍성신문
  • 승인 2019.06.28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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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 전문연구원)

여러 갈래길 누가 말하나 / 이 길 뿐이라고

여러 갈래길 누가 말하나 / 저 길 뿐이라고

여러 갈래길 가다 못갈 길 / 뒤돌아 바라볼 길

여러 갈래길 다시 걸어갈 / 한 없이 머나먼 길...




1989년 스무살 초반에 한국유네스코학생회연합회(KUSA)에서 주최한 조국순례대행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부터 경기도 이천까지 걸으면서 노래 가사처럼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길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온종일 걷고 숙소 캠프에 들어갈 때 우리를 맞이했던 노래, 김민기의 ‘길’이다. 그래서인지 길을 걸을 때면 영락없이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최근에 어렸을 적 걸었던 홍성의 여러 곳을 걷기도 해보고 차로 지나가 보기도 했다. 걸으면서 느끼는 공간감은 확실히 차로 지날 때와는 다르다. 홍주성에서 바라본 남문 밖과 시내, 이리 작았었나 싶다.

홍성 시내에서 남문동을 지나 건너편 남장리, 홍성초등학교에서 방송국을 지나는 옥암리와 월산, 홍성IC에서 들어오는 옥암리와 오관리 일대, 홍성초에서 북서리 방향으로, 또 대교리 방향으로. 홍성초등학교와 홍성여중, 여고를 다녔던 나의 생활반경을 훝어 봤다. 걸어 보기도 하고 차로 가다가 막다른 길에서 되돌아 나오기도 하고, 농로를 가로질러 내포 쪽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달라진 신체 크기와 공간 경험 탓인지 어렸을 적 체득했던 스케일과 공간감과는 확연히 달랐다.

작은 길로 걸어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공간과 풍경은 커다란 찻길로 인해 낯설었다. 뭔가 어색한 분절감, 공간이 찻길로 인해 쪼개져 조화롭기보다는 단절감이 들었다.

길은 시간이란 역사 속에서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하면서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연 발생적인 길은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이지만 나름 체계적이고 위계가 있어 보인다. 길 중심으로 집들이 배치되고 이동만이 아닌 소통하는 커뮤니티 기능도 있다. 집이 먼저인지 길이 먼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긴밀하다.

우리가 걷고, 만나고, 노닐고, 일하고, 이야기 나눴던 우리 삶을 고스란히 이어주는 길. 눈에 보이는 오래된 집, 사당, 역과 철도, 향교 등만 자산이 아니다. 길도 자산이다.

우리는 길에서도 그 시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길의 체계 또한 지역의 품격을 말해주기도 한다.

홍성군 내 공간을 이어주는 길 체계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체계적이고 계획성 있는 길보다는 그때마다 부분부분 고쳐진 길로 공간의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행보다는 찻길 우선인 듯한데 운전자에게도 편안한 길은 아니다. 뭔가 정돈되지 않은 길 체계다.

도시를 계획할 때 토지확보가 쉽지 않겠지만 기존의 길과 새로운 길이 사람을 중심으로 소통하고 서로 이어지는 조화로운 체계를 고려했으면 한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길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던 공간과 풍경들, 지역의 품격이 고스란히 담겼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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