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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3>최승희-커피를 사랑한 경성의 모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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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3>최승희-커피를 사랑한 경성의 모던 걸
  • 홍성신문
  • 승인 2019.06.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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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미 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커피는 변혁이다. 그것은 근대에서 현대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삶을 닮아 있다. 커피는 담장 안을 맴도는 양갓집 규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담장을 떨치고 나와 도심을 활보하는, 진보적 여성의 몫이었다. 칠피 구두를 신고 뒷꿈치 콕콕 찍으며 허리 세워 걷는, 내 삶은 내 것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라는 모던 걸들의 외침이 한 잔의 커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시절 커피는 고단한 일상의 사치이자 위로였다. 식민 치하의 삶이 제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만은 놓치지 않으리란 결기가 커피 한 잔으로 표출되어 나타난 것이다.
무용가 최승희의 삶 또한 그러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새하얀 커피잔을 든 그녀의 모습은 개화기 모던 걸의 상징이었다. 모던은 곧 모단(毛斷)이란 우스갯소리처럼, 그녀는 귀밑머리 단발로 머리를 잘랐고 터번과도 같은 모자를 눌러쓰며 신여성의 유행을 선도했다. 그 시절 최승희는, 이름만으로도 희망이 되는 조선의 빛이었다. 손기정이 마라톤으로 조선을 알렸듯, 최승희 또한 무용으로 조선의 이름을 드높였다. 그녀에게 삶은 허공을 가르는 사뿐한 춤사위였다. 중력을 뚫고 오르는 한 마리 학처럼, 그녀의 삶 또한 현실의 중력에 대한 도전이자 비상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힘으로 제압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은 총칼로도 제압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이란 시대나 환경에 관계없이 오직 노력과 선택만으로 빚어지는 것>임을 그녀는 자신의 춤사위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식민지 시대를 사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시대의 물살에 흔들리지 않았다. 총명한 두뇌로 월반(越班)을 거듭한 그녀는 일본 무용의 거장 이시이 바쿠를 만나며 무용의 길로 들어섰고, 불모지와도 같던 한국 무용계에 신문화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 무용은 상류층만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것은 궁중에서 행해지는 제례무거나 기방(妓房)에서 공연되는 기방무였다. <그들만의 리그>를 <우리 모두의 리그>로 바꾸기 위해 그녀는 전통무용에 신(新)무용을 접목한 춤의 현대화를 도모했다. 이사도라 던컨이 로마의 조각을 무용으로 재현했듯, 그녀 또한 조선의 석굴 조각을 무용으로 녹여냈다. 그렇게 탄생한 창작무 <석굴암의 벽조>는 그녀를 세계에 알리는 불세출의 역작이 되었다. 미국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돌며 그녀는 피카소와 장 콕토 등 당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최승희라는 희망을 조선에 심기 시작했다.

그녀는 커피 업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격변의 시대, 커피는 모던 걸, 모던 보이의 필수품이었고 시대를 앞서가는 신여성의 아이콘이었다. 흔들리는 여심을 사로잡기에 최승희만큼 강렬한 유혹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시대를 앞서 사는 모던 걸이었다.카페인 만큼이나 강렬한 그녀의 눈빛은 유연한 춤사위와 더불어 잊을 수 없는 모습으로 뇌리에 남았다. 새하얀 커피잔을 들고 조선 호텔 썬룸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커피를마시지 않고는 신여성이 될 수 없다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며 커피 열풍을 부채질했다. 시대를 앞서 산 그녀의 삶은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만주로, 중국으로 일본군 위문 공연을 떠났던 그녀는, 월북이라는 또 하나의 선택 앞에서 불행한 삶을마감해야 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제의 행복이 오늘로 이어지지 않는, 삶의 그 가역적이고 불가해함을 알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커피 한 잔에도 행복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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