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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홍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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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7  22: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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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공연기획경영학과 학생들이 <내가 본 홍성>을 주제로 글을 썼다. 한국언론재단의 뉴스활용지원사업 일환으로 디지털글쓰기(담당교수 김미경) 강좌의 결과물인 글을 세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주>

 

   
 

홍주성에서 옛사람을 만나고 현재의 나를 만나다
                                                       김효경

청명한 밤공기를 벗삼아 기숙사 뒷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뻗은 길을 따라 구 도심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홍성읍내에는 홍주성,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등의 귀중한 유물이 남아있다고 한다. 호기심을 안고 홍성온천을 지나 반짝이는 불빛을 쫓아가다 보니 홍주성에 이르렀다. 홍주성은 산성이 아니고 마을을 둘러싼 성이라 홍주읍성이라 한다. 총길이가 1,772미터에 달하는 성벽과 4대의 성문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북서쪽의 조양문과 810미터만 남아있다고 안내판에 써 있었다.

야간 조명이 드리운 홍화문은 홍주성의 남문이다. 이 남문을 오르다 보면 홍주성벽이 보인다. 홍화문으로 들어오다 보면 홍성읍내가 보인다.

홍성 역사관 지붕이 보이고 뒤에 홍성군청이 있다. 홍주성으로 들어오면 탁 트인 공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넓게 펼쳐진 잔디 위에 누워 친구와 별을 세며 소소한 얘기들을 나눌 수도 있다. 홍주성은 오랜 역사의 아우라를 갖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옛날 사람들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며, 나에게도 평안과 안락을 주고 있었다. 별들은 그 별이지만, 역사의 한자락의 숨쉬던 선인과 또 한자락에 별을 헤는 내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밤공기를 따라, 빛을 따라 걸어간 그 자리에서 옛사람을 만나고 현재의 나를 만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사실 홍주는 홍성의 옛 지명인데, 홍성은 일제강점기에 홍주와 결성과 합해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홍주는 서북부 지역의 서해의 관문으로서 중요고을이었다고 한다. 여전히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가 있어서 충남도청이 위치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새삼 유럽의 유적지를 걷는 것만큼이나 내가 생활하는 홍성의 유적지에 대해 이해한 것이 대견하고 대견하다. 그 역사적인 의미만큼이나 내 친구와 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듯 하여 행복하다. 홍성은 행복이다.



 

   
 

적막한 주말엔 홍성을 탈출하는 이유
                                                       박예원

청운대학교 주변 대학촌은 주말엔 적막해진다. 평일엔 학교 곳곳에, 대학촌 곳곳에, 카페 곳곳에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주말엔 썰물처럼 애들이 빠져나가 적막해진다. 멀 리 대구에서 유학 온 나에게 주말의 이 적막감을 견디기가 힘들다. 대구까지 가는 길은 복잡하다. 버스를 타던지, 기차를 타던지 꼭 한번은 환승해야 한다. 4시간 이상 걸리는데도 대구까지 간다. 그런데 꼭 적막감을 견디지 못해서 장거리 통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홍성엔 뭔가 아쉬운 지점이 있다.

홍성은 일시적인 거처 같다. 가족이 있는 곳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의욕을 자극하는 지역적 자산이 부족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산업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대도시와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지방도시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문화적이고 산업적 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방도시의 장점은 번잡하지 않고 학습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는 점이지만, 현대 생활에서 다양성과 복잡성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게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지,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다. 홍성에 살지만 대구의 가족과 친구와 실시간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같은 곳에 있는 듯한 실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실재에서는 인간의 부대낌과 문화적 장소가 주는 친근감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홍성이 더욱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시설과 프로그램을 만들고,4차 혁명시대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꿈틀거릴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면 좋겠다.



 

   
 

냄새로 가라앉은 홍성의 첫인상, 붉은 뜨거움으로 살아나

                                          정대현

2018년 3월 처음 홍성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성’의 위치를 모른다. 그래서 ‘충남’에 있다고 말한다. 처음 ‘홍성’ 에 진입할 때 날 반기는 것은 냄새였다. 냄새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홍성의 비언어는 축산 지역임을 인식하게 했다.

홍성은 사람들에게 시골로 인식되어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성장을 위해서 한양 혹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서울에서 홍성으로 성장을 위해 왔다.

처음 홍성으로 왔을 때 배움의 의미 보다는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복잡하고 번잡하고 놀거리가 많은 도시보다도 시골에서 배움과 학습의 환경이 잘 조성된다는 것을 느꼈다. 교육다큐멘터리를 보면 미국의 대학은 대도시가 아니라 중소도시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중소도시는 칼리지 타운처럼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한다. 프로그램에서 보면 학생들은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머리끈 동여매고,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매일의 학습량을 따라가기 바쁘다. 물론 방학이 되면 고스트타운처럼 썰렁해지지만, 학기 중에는 젊음이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다.

홍성도 이런 미국의 대학도시처럼 칼리지 타운이다. 축산지역의 시골은 냄새로 규정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홍성의 대학 길에 위치한 청운대학교는 칼리지 타운의 기둥을 잡고 있는 곳이다. 대학 길에 위치한 원룸촌과 곰달구를 비롯한 식당들, 카카오 택시, 배달업체등은 청운대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것이다.

첫인상은 도시와 구별되지만, 청운대학교와 대학촌의 하루는 어느 칼리지 타운보다 뜨겁다. 그리고 그 뜨꺼움이 홍성을 살아있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언어적 냄새가 홍성의 첫인상이었다면 1년을 생활한 홍성은 미래를 고민하고 도전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임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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