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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기획/특집
홍성의 한국전쟁기 희생된 민간인들 (2)진실화해위'국가의 사과, 평화인권교육'권고
이번영 시민기자  |  bunyung@h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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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7  04: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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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휴전반대 홍북면 궐기대회(홍성문화원 사진으로 보는 홍성100년사)

홍성군 참전군인 희생자 6배인 민간인 1000명 희생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인민군이 삼팔선을 넘어 내려오자 이틀만인 27일 홍성경찰은 국민보도연맹원을 소집, 100여 명을 경찰서 상무관에 구금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7월 11일 보도연맹원 구금자를 전원 살해하고 경찰은 홍성을 떠나 후퇴했다. 용봉산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청년의 눈이 뒤집혔다. 인민군이 홍성에 진입한 7월12일부터 10월 7일까지 3개월 동안 305명의 군민이 학살당했다. 국군이 홍성을 탈환하자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했다는 혐의로군민 630여 명이 또 보복학살당했다. 6개월동안 3차례에 걸친 보복살육으로 1000명이넘는 홍성군민이 목숨을 빼앗겼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실제 희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국전쟁 3년 동안 군대에 입대해 적과싸운 홍성의 군인은 전사자 53명, 부상자 112명 모두 168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충남서부보훈지청에 등록돼 있다. 전투에 참가해 희생된 군인보다 여섯배 많은 민간인이 후방에서 희생된 것이다. 국가권력이 국민을 불법으로 학살한 100명이 도화선이 돼300명, 630명으로 증오와 보복이 몇 배씩 증폭된 것이다. 보도연맹원을 살해하지 않고후퇴한 천안의 경우 인민군 점령기에도 민간인 살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양쪽 희생자들의 유족과 관련자들은 지금 같은 지역에서 늘 만나며 살고 있다. 겉으로 말을 못 하는 마음 속 응어리를 극복하고 나라와 지역을 위해 함께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적 숙제를 풀기 위해 진실부터 밝히고 화해로 나아가자는 노력이 진행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거 설치된 진실화해위원회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홍성, 서산, 당진, 태안, 보령, 부여지역에서 발생한 희생사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2006년 10월26일부터 2010년 5월14일까지 3년 7개월 동안 각 지역 경찰서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 자료, 연구자들의 논문, 희생자 유족과 참고인들 진술 등 방법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결과보고서에서 밝힌 분야별 홍성지역 사건을 발생 순서에 따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보도연맹원 살해가 도화선
국민보도연맹은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이들을 보도(保導: 보호하며 지도)’한다는 취지에서 정부가 주도해 만든 단체다. 이들은 대한민국정부 절대지지, 공산주의배격 등을 강령으로 내세운 반공단체다. 전국적으로 30만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했으며 시·군 지부, 면단위까지 조직체계를 갖췄다. 홍성군지부는 1950년 1월 25일 결성됐으며 이사장에 박헌교 홍성경찰서장, 지도위원장에 성세호 홍성지청장이 선출되고 사무국장에 박종세, 선전부장에 이강세가 임명됐다. 홍성 보도연맹원은 충남도내에서 가장 많은 1400여명이었던 것으로 위원회는 추정하고 있다. 회원은 좌익활동을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좌익과 무관하게 회원이 된 경우가 많았다. 지역간 회원 경쟁으로 실무자들이 회원에 대한 취직알선 등 혜택을 준다는 홍보와 어딘지도 모르고 도장을 찍어준 경우 등 다양하게 가입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후퇴하면서 “인민군이 점령하면 보도연맹원들이 협조할 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는 것이다. 홍성경찰은 내무부 치안국 통첨에 의해 27일부터 이들을 불러 상무관에 구금시켰다. 7월 8일 게엄령이 선포돼 경찰업무는 계엄사령관 관장 하에 들어갔다. 7월 8일에서 11일경 위에서 내려온 특무대에 의해(박헌교 당시 홍성경찰서장 주장) 보도연맹원들이 어딘가로 실려갔다. 진실화해위는 용봉산골짜기와 광천 담산리, 갈산면 행산리 이동부락 뒷산 등에서 1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했다.

우익인사 305명 희생
인민군은 7월 12일 새벽 홍성에 들어와 10월 7일까지 3개월간 점령 통치했다. 각 지역별 인민위원회가 설치돼 해당 지역을 통치했다. 인민위원회 자위대, 민청원, 여맹원들이 반 혁명세력인 소위 ‘반동분자’를 색출했다. 지주, 경찰,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 회원, 공무원, 교사, 좌익 탄압에 앞장 선 사람들이 주 대상이었으며 인민재판에 의해 즉결처분된 경우도 많았다.

공보처가 발간한 ‘6·25사변 피살자 명부’ 에는 홍성지역에서 희생된 246명의 명단이 등재돼 있다. 한국자유총연맹홍성군지부에서 발간한 ‘6·25학살자 명단’에는 홍성지역 희생자 250명이 등재돼 있다. 진실화해위는 내무서 문헌 자료에서 미신청 의생자 55명의 명단을 찾아냈다.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홍성군민은 모두 305명인 셈이다.

홍성 내무서 유치장이나 각 면 분주소에 감금돼 있다가 홍성읍 월산리와 소향리로 옮겨 집단으로 사살했다. 당시 월산리와 소향리 주민들은 밤에 무수한 총성을 들었으며 다음날 아침 사건현장에서 수십구씩 시신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구항면 오봉리뒷산, 갈산면 상촌리 노동마을 분주소 인근, 갈산초 인근, 그리고 각 면소재지에서 즉결처분하기도 했다. 가해자는 내무서원, 인민군, 지방 죄익이었다.


점령기 살기위한 부역
10월 7일 인민군이 홍성에서 퇴각하고 경찰이 들어왔다. 각 읍면에서 좌익에 희생된 유족과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 의용소방대, 낙오된 군인 등으로 치안대가 구성됐다. 인민군 점령기 부역혐의가 있거나 좌익활동 경력자에 대한 연행 구금 살해가 진행됐다. 1950년 10월~12월 사이 지역별 희생자 규모는 다음과 같다. △홍성 소향리 붉은고개, 용봉산 절 입구 골짜기등 100 여명 △홍북 대동리 뒷산 교통호, 동방송 골자기, 용봉산냇가 40여명 △광천 담산리 금광구덩이 37명 △결성 폐금광 영장골 방공호. 공동묘지 방공호 100여명 △은하 대천리 공동묘지 방공호 50-60명 △구항 오봉리 뒷산 4명 △금마 지서 뒤 화양리 안골 50여명 △홍동 원현리 금광구덩이, 송월리 모래천변, 홍동지서뒷산, 홍동초 뒷산 150여명 △장곡 가송리배밭 교통호, 장곡초 뒤 방공호, 산성리 하천구덩이 산성리 덕곡 100여명 △갈산면 불상지 6명. 합계 630명 이상.

인민군 점령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도 있지만 대개 점령정책 강요에 의해 공적역할을 맡거나 단체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금마면 정모씨의 경우 마을주민 투표에 의해 인민위원장을 맡게됐는데 수복후 주민들이 피신을 권유했으나 “내가 잘못이 없는데왜 피신하나”며 집에 있다가 연행돼 살해당했다는 것. 평소 개인적 감정이나 원한을 부역혐으로 씌어 희생되거나 월산리 장모씨는부역했던 사람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끌려가 살해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비극의 세월이었다. 우익이나 좌익이나 공통의 인식은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는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가의 사과, 전수조사에 의한 진실규명, 평화인권 교육” 등을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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