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9:47 (금)
편지를 본 아들·딸이 모두 울었다
상태바
편지를 본 아들·딸이 모두 울었다
  • 민웅기 기자
  • 승인 2019.05.24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천 벌말 문해교실 배움 열기로 가득
12명 내년 2월 졸업…초등학력 인정
 

24개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난다. 혹시나 한마디라도 놓칠까 선생님의 움직임을 그대로 쫓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책상 위 공책에는 여러 번 지웠다 다시 쓴 글자가 오롯하다. 종이가 찢어지도록 꾹꾹 눌러 쓴 한글은 우뚝하다.

고희가 훨씬 지난 노인들이 마을회관 2층에 모여 3년을 공부했다. 월, 수, 금 1주일에 3일씩 한글을 깨치기 위한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다. 늦깎이 공부로 열기가 가득한 광천읍 신진2리 벌말마을 한글교실을 22일 찾았다.

벌말마을은 홍성군평생학습센터의 지원으로 2017년 3월 초등학력 인정 성인 문해교실를 열었다. 총 3년 과정으로 내년 2월이면 졸업을 하게 된다. 홍성군 최초 마을단위 학력인정 프로그램이다.

신복섭 교사의 지도 아래 장곡면에서 등하교하는 학생 3명을 포함해 12명의 여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정자(78)씨가 막내, 이윤복(92) 학생이 맏언니다. 2년이 넘는 배움에 성과도 있었다.

전국 백일장 대회에서 2017년에 1명, 지난해에는 3명이 상을 탔다. 올해 대회에도 모두 작품을 보냈다.

권오남(81) 학생은 아들에게는 보내지 못했던 편지를 손자에게 보낼 수 있어 “기쁘고 좋다”고 자랑했다. 군대 간 손자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았다. 권 학생은 공부를 하면서 지팡이를 놓을 수 있었다며 배우면 건강도 좋아진다고 했다.


이정자(78) 학생은 "나는 숫기가 없어 사위에게 말로는 잘 못한다. 그래서 장모의 속마음을 글로 몇 자 적어 병문안 가는 아들 편에 보냈더니 편지를 본 아들, 딸, 사위 모두 울었다고 하여 나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신상권 벌말 이장은 “공부를 시작하면서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며 서로간의 배려와 화합으로 마을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복섭 교사는 “학생들이 눈이 열리며 얻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대견해 했다.

학생들은 거꾸로 신 교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백일장에 출품한 글마다 감사한 마음이 켜켜이 쌓였다. 맏언니 이윤복 학생은 “생전에 처음으로 만난 우리 학교 한글 선생님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썼다.



<박정순 88세>
나는 가방 들고 공부하러 갈 때가 제일 행복해요. 공부는 재미있어요. 한쪽귀로 빠져 나가고, 열 개를 배워도 한 개도 남는 것도 없고 선생 말씀이 머릿속에 잘 들어가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그러나 “어머님들 지금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갈 연세가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것들도 나올 때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 나오도록 하는 공부입니다. 지금 모르셔도 자꾸 듣다보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공부는 잘못해도 공부하러 갈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이 나이에 공부할 학교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공부할 건강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정자 78세
한글 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보람된 일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 하는 속마음을 글로 전할 수 잇어 참 좋다. 몇 달전 사위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일이다. 나는 숫기가 없어 사위에게 말로는 잘 못한다. 그래서 장모의 속마음을 글로 몇 자 적어 병문안 가는 아들 편에 보냈더니 편지를 본 아들, 딸, 사위 모두 울었다고 하여 나도 많이 울었다. 또 어려운 형편에 4남매를 키우며 좋은 옷 못 입히고, 좋은 것 못 먹여 키워서 늘 마음에 한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 미안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큰 딸에게 부쳤다.

것이 신기했다. 한번은 내가 아는 문제가 나왔는데 4명의 출연자들은 못 맞추는 때도 있었다.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이것이 배움의 기쁨이고 배움이 내 자신감을 많이 키워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