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48>로시니 -파네토네와 커피, 세비야의 이발사
상태바
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48>로시니 -파네토네와 커피, 세비야의 이발사
  • 홍성신문
  • 승인 2019.05.20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 미 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세비야의 햇살은 눈부시다. 스페인의 심장이란 별명답게, 스페인의 남부 도시 세비야는 햇살마저도 강렬하다. 신화와 전설로 가득 찬 스페인 광장, 오렌지 나무들이 총총 이 늘어선 세비야 대성당과 신대륙 항해의 시작점과달키비르강은 햇살과 더불어 빛나는 세비야의 보석들이다. 세비야의 햇살이 더욱 빛나는 건 햇귀처럼 퍼지는 불후의 명곡들 때문이다. 비제를 비롯해 베토벤과 모차르트, 로시니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세비야를 배경으로 곡을 만들며 스페인의 심장, 세비야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이다.

도시는 사는 이를 닮는다 했던가. 서럽도록 강렬한 지중해 햇살은 사는 이를 닮은 또 하나의 자화상이다. 세기의 난봉꾼 돈 주앙이 그랬듯, 세기의 사랑꾼 알마비바 백작 또한 뜨거운 열정으로 세비야의 전설이 되었다. 알마비바 백작에게 세비야는 목숨 걸어지키고픈 연인, 로지나의 고향이었다. 벼락처럼 등장한 여인, 로지나에 반하며 그는 세비야를 찾았고, 피가로라는 이발사를 통해로지나에 접근하며 그는 숨 막히는 한 편의연애사를 완성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통해서였다. 알마비바라는오페라 속 인물이 세비야를 대표하기까지,거기엔 작곡가 로시니의 눈물겨운 노력이있었다. 열 네 살에 오페라를 작곡한 그에게세상은 눈물 흘려 완성해야 할 악보와도 같았다. 아버지는 관악을, 어머니는 성악을 하는 음악가 집안의 아들답게 그는 음악적 소질을 타고 났지만 그러나 오늘 일을 내일로미루는 고질적인 습벽 탓에 그는 늘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시간에 쫓겨야 비로소 영감이 떠오른다>는 그의 고백처럼 그는 늘 상영 시간에 임박해 오페라를 쓰곤 했다. 그것은 스스로의 생명을 갉아먹는 암병와도 같았다. 마감을 재촉하는 인쇄업자를 문 밖에 세워둔 채 그는 여물지도 않은 악상들을 악보에 담아 창 밖으로 던져주었고그 때마다 그는 자신의게으름을 자책하며 절필을 다짐하곤 했다. 음악회의 단골 메뉴 <도둑까치>도, 세기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도, 그렇게 얻어진 벼락치기의 결과물이었다.

벼락치기를 일삼은 그에게 커피는 더없이 요긴한 음료였다. <작품을 쓰는 동안, 최음제처럼 늘 커피를 마셨다>던 그의 고백처럼, 커피는 그에게 붓끝을 움직이는 중력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것은 파네토네라는 빵이 있어 더욱 빛나는 악상(樂想)의 기폭제였다. 성탄과 새해를 기념해 만드는 파네토네는 천연효모에 버터와 설탕, 과일 절임 등을 넣어 만든 이탈리아 전통의 빵이었고 그는 빵의 달달함을 줄이기 위해 커피를 곁들여 마시곤 했다. 오페라로 인해 넉넉한 삶을 산 그는 인쇄업자에게 곧잘 파네토네를 보내 사과의 뜻을 전했다. 파네토네를 넣은 선물 꾸러미 안에 달달함을 식혀줄 커피 또한 함께 넣었음은 물론이다.

음악이라는 배로 17세기를 건너온 그는 37살, 이른 나이에 오페라를 접었다.

<세비야의 이발사>를 비롯, 서른 일곱 개의 오페라를 작곡한 뒤였다. 초야에 묻힌 그를 다시 불러낸 건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담은 성가곡, <스타바트 마테르>였다. <최후의 날, 나팔소리 울릴 때 주여, 저를 기억하소서로 시작되는 <스타바트 마테르>는 어쩌면죽음 뒤에도 여전히 기억되길 바라는 로시니 자신의 염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달한 맛의 파네토네와 커피, 그리고 세비야의햇살 속에 더욱 빛나는 그의 명곡들처럼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