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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사설/칼럼
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47>T.S. 엘리엇 -커피 스푼으로 인생을 저울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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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8  1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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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미 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인생도 때로는 측량이 필요하다. 살아온 날들을 눈금으로 하는 주관적 헤아림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그래도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좌표를 둘러보는 일은 중요하다. 목표는 제대로 세워져 있는지, 놓치고 있는 가치는 없는지, 목표에 도달하느라 행여 소홀한 관계는 없었는지, 형광펜을 긋듯 그렇게 꼼꼼히 주변을 둘러보는 일은 가끔씩 필요한 것이다.

커피 스푼으로 인생을 잰 건, 영미 시인 T. S. 엘리엇이었다. 그에게 삶이란, 스푼으로커피를 타는 일만큼이나 사소한 것이었다.스푼으로 커피를 타는 일이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불요불급한 일이었다. 커피 자체가 기호품인데다 스푼 없이도 얼마든 마실수 있는 간편한 음료인 탓이었다. 그럼에도굳이 커피 스푼으로 측량하는 인생이란, 참을 수 없이 가벼우나 그래서 더 사무치는 실존 그 자체였다. 광풍과도 같은 세계 대전을겪어낸 세대였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처럼 인간은 자기식대로 신을 해석했고,왜곡된 신의 존재로 세상을 움직이며 삶을통제하기 시작했다. 니체가 주장한 신은 결코 하늘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의 평화 속에 있었고 차별 없는 은혜와 긍휼 속에 있었으며 지금 딛고 선 땅에서 일궈내는 기쁨과 환희 속에 있었다.

니체의 시선으로 보면, 이 땅의 신은 다 거짓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하늘에 두고 그것이 마치 하늘에만 있을 거라 믿게 하는 착각, 주일성수와 기도, 헌금을 최고의 신앙이라 믿게 하는 교리, 불멸에 대한 환상과 종말론으로 현실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신념 등은 애시당초 신이 준 믿음이 아니라는 게 니체의 주장이었다. 신이 왜곡 당한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T.S.엘리엇이 쓴 시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는 그러한 현실 인식을반영한 처절하고도 뼈아픈 시였다. <내 결단의 번복을 알고 있다/우유부단한 저녁과 아침, 오후의시간들/커피를 덜어내는스푼으로 내 삶을 되질해왔다/나는 안다/ 멀리서들려오는 음악에 죽어가는 운명과/시들어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그러니,내 어찌 옴짝달싹할 수 있으리>. 그가 쓴 시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에 나오는 프루프록은,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무기력한 인간이었다. 환상의 세계에 뛰어들 수도, 냉혹한 현실에 적응할 수도 없는 그는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는 일로 괴로운 삶을 채워나갔다. 그의 삶에 커피는,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일상 가운데 미끄러지지 않는 유일한 삶의 기표와도 같았다. 그러니 어찌 커피 스푼으로 자신의 삶을 되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었던 엘리엇은 <시대를 녹여내는 시(詩)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 믿은 시인이었다. 하버드와 옥스퍼드, 소르본느를 섭렵하며 동양철학과 불교를 공부한 그에게,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려 영원한 것을 얻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가 믿은 영원이란 이 땅의 삶과 동떨어진 천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루하고 고단할지라도 싸워 얻어야 할 현실 속 평화이자 기쁨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 일컬었을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4월은, 화려하기에 앞서 처연했고 아름답기에 앞서 고달팠다. 꽃이 피는 과정을 아는 자에게 꽃은, 화려한 외연에 앞서 쌓아왔을 인고의 시간들로 비쳐지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그는 커피 스푼으로 삶을 측량하며 일상을 견뎌냈고 운명까지도 끌어안는 <아모르 파티. Amor Fati>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내려 애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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