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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신문> 홍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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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신문> 홍동중학교
  • 홍성신문
  • 승인 2019.05.0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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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민병성 / 편집인 : 최미옥
 

우리 손으로 키우는 홍동 텃밭 농작물…홍동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위한 생태환경수업
홍동중학교에는 2학년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생태환경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규 수업 속 매주 목요일 교실 안팎에서 활동하며 생태환경의 소중함을 느낀다.

생태환경은 학생들에게 자연과 친숙해 질 수 있는 기회와, 마을학교가 실행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자연 속에서 따뜻한 인성을 배워가는 시간을 가진다. 더불어 자연과 함께하며 환경이 곧 우리 삶이라는 친환경 마을에서 환경을 배워가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생태환경수업은 크게 환경에 대한 이론수업과 체험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이론 수업에서는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얼마나 해로운지 등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계절에 따른 농작물에 변화와 특정 농작물의 파종시기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교육하였고, 이는 앞으로 진행될 체험활동과 연계되었다. 직접 상추나 배추, 감자, 옥수수와 같은 농작물을 파종시기에 맞추어 학교 뒤 텃밭에 파종하였다.

 

비가 오면 떨어지는 물을 받아 정화한 후 사용할 수 있는 빗물저장소를 만들었다. 이 빗물저장소에 저장된 물은 실제로 재배하는 식물에 사용될 예정으로 물 부족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학생들은 생태환경수업을 통해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색하리만큼 멀었던 흙과 친해지고, 우리가 먹고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2학년 박서빈 학생은 생태환경을 통해서 우리의 환경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와 닿았다고 한다. 깨끗하고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실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학생기자 3학년 김수현]

 

‘나’의 스윗스팟을 찾아라…유튜버 이창현 진로특강 열려
4월 19일(금) 5-6교시에 홍동중학교에 이창현 강사님이 오셔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진로특강을 해주셨다. 진로특강의 주제는 ‘비전을 발견하고 디자인하라’ 였는데, 자신의 비전을 발견하여 자기만의 생각과 개성으로 삶을 디자인하라는 말씀이셨다.

이날 강의에서 가장 강조하신 것은 ‘스윗스팟’이라는 것이다. ‘스윗스팟’은 골프채나 테니스 라켓 등에 공이 맞았을 때 가장 멀리, 빠르게 날아가는 부분이라고 한다. 이창현 강사님은 모든 사람에게 스윗스팟이 있으며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하고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강사님도 자신의 스윗스팟을 찾기 위해 많은 경험과 노력을 했다고 하셨고 세 번만에 찾으셨다고 한다. 과연 나의 ‘스윗스팟’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던 것 같다.

이창현 강사님은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하시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것은 바로 유튜브였다. 그리고 유튜브에 관한 책도 쓰고 있다고 하셨다. 유튜브에 관련된 질문을 받으며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하나 자세히 답변을 해주셨다. 편집 프로그램은 무엇을 사용하고 계신지, 광고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등 이해하기 쉽게 답변을 해주셨다.

모든 사람은 실패를 겪기 때문에 실패를 겪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끝없이 도전하고 경험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이창현 강사님의 특강은 우리들의 눈높이에 맞춰 여러 가지 예를 많이 들어주셔서 쉽게 이해되었고, 깜짝 춤도 춰주셔서 즐겁게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저마다의 빛깔로 더불어 성장하는 사람’이 되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학생들 모두 각자 자기만의 ‘스윗스팟’을 찾아 이창현 강사님처럼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학생기자 윤햇살]

 

친환경 마을, 홍동의 봄맞이 큰장 열려…EM발효액으로 홍동천 수질 살리기 봉사도
지난 4월 27일 토요일 홍동에 있는 애향공원에서는 봄맞이 큰장이 열렸다. 홍동 주민들은 마을활력소를 중심으로 봄맞이 큰장을 열었다. 홍동 주민들이 직접 키운 꽃과 채소 모종을 팔기도 하고 풍성한 먹거리가 또한 즐겁게 하는 행사였다.

직접 가져온 모종에는 토마토 한 종류만 해도 아르헨티나, 레드페어, 안틴코뉴 등 다양한 품종이 준비되어 많은 인기가 있었다. 먹거리로는 수제버거와 생강에이드, 소떡소떡 등이 있었고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 위해 친환경적인 유리빨대와 나무칫솔을 팔기도 하여 관심을 끌었다.

특별한 점은 이 모든 것은 홍동 지역만의 화폐인 ‘잎’으로 거래된다는 것이다. 이날 우리 학교 학생들은 홍동천의 수질개선을 위해 EM발효액을 사용하여 EM 흙공을 만드는 봉사활동을 하였다. 마을의 환경을 보전하고 지키고자 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노력이 빛나는 날이기도 했다.

 

이렇게 친환경 홍동지역을 위해서, 더불어 사는 마을 홍동을 위해서 함께 고민해 나가는 홍동지역의 주민자치가 너무 멋지다. 지역 활성화를 추구하는 홍동이 진정한 우리가 바라는 농촌 모습이 아닌가 싶다. [학생기자 3학년 윤햇살]



<국어시간 자서전 쓰기>
 

방황
홍동중학교 3학년 김서현
내 삶은 꺼졌다, 켜졌다 하는 전등 같았다. 내 인생은 전등처럼 환하게 밝기도 하고, 정말 깜깜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어두운 인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내 인생이 많이 어둡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2004년 2월 25일. 나는 부잣집 딸이 아닌, 그렇다고 가난한 집의 딸도 아닌 딱 평범한 집의 딸로 태어났다. 돈도 여유 있고, 원하는 것은 대부분 얻고, 부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고, 친남매 못지않은 사촌 오빠들과 언니도 거의 매일 만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행복한 아이였다.

그러나 이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2010년 5월 20일, 내가 7살이 되던 무렵, 아빠 직장 거리상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가며 거의 매일 만나던 사촌 언니, 오빠들과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어졌고 놀이터에서 6년 동안 같이 놀던 친구들과 만날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던 나에게는 이 모든 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고 이제 예전처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가 버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술을 즐겨하시던 아빠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

서울의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고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라 엄마는 유치원생이었던 동생은 고모네 집으로, 나는 학교로 보내야 한다며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의 ㄹ집으로 한 달간 맡겼다.

가장 친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모네 집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단 한 명의 가족도 없이 나 혼자 아빠를 기다리기 무서웠다.

어리다는 이유로 아빠가 어디가 아픈지 알 수도 없는 상태에서 평소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건 매우 어려웠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즐거운 ‘척’, 행복한 ‘척’, 울고 싶은데 웃는 ‘척’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 아빠는 수술을 잘 마쳤고, 회복한 뒤 회사도 예전처럼 다니셨다. 이제 예전처럼 돌아올 시간만 남았다. 아니, 그 시간은 애초에 6살이 끝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술 후에도 술을 많이 마셨던 아빠는 다시 건강이 안 좋아져재수술을 하게 되었다. 결국 5학년 때도 3학년 때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나는 이때까지도 아빠가 무슨 병을 가지고있는지 몰랐다.

수술을 마친 후, 나는 또 예전처럼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말을 하셨다. 아빠가 공기가 좋은 시골, 즉 할아버지댁에서 살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싫다며 박박 우겼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 의견을 들어주시지 않았다. 결국 아빠는 어느 정도 회복한 뒤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을 내놓고 엄마, 동생, 나는 집이 팔릴 때까지 살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 2년 사이엔 나한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2년 동안 나는 빽이 있어야 차별 받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암만 학교생활을 최선을 다해서 해도공부를 못하면 선생님께 차별 받는 사회에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선생님들을 포함한 다른 어른들이 ‘너네 때는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등의 말이 되게 우습게 들렸다. 모두가 앞에서는 웃어주지만 마음 속에서는 비웃는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계기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사춘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중학교 1학년 때, 나의 방황은 심해졌다.

엄마와의 의견 충돌로 인해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고, 차별을 받으며 자존감은 점점 하락되는 학교에 있기 싫어 자퇴하고 싶었다. 내 목표는 어릴 때처럼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아빠가 건강 문제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으니 돈도 아껴야 했고, 2주~3주에 한 번 아빠를 보니 매일 매일을 영상통화를 하며 지냈다. 모든 것이 바뀌고 나는 그 목표를 포기한 채 방황했다.

그런 나의 방황을 멈추게 하는 한 사건이 있었다. 부모님께 혼나거나, 친구로 인해, 선생님에 의해 멈추게 된 것이 아니다.바로 나 스스로 그 방황을 멈추게 되었다.중학교 1학년 2학기 말 대청소를 하던 날이었다. 물론 아빠 없이. 그러다 나는 편지봉투에 있는 한 장의 종이를 발견했다. 보낸 곳은 ‘서울 백병원’. 아빠가 다니는 병원에서 보낸 것이다.

아무래도 진단서처럼 보였다. 이때까지도 아빠의 병명을 모르고 있던 나는 그 진단서를 뜯어볼까 말까 매우 많은 고민을 해다. ‘뜯어봐도 될까?’, ‘그래도 5년 가까이 아빠의 병명을 몰랐는데 이젠 알아야되지 않나?’ 그 짧은 시간 안에 머릿속에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뜯어보기로결정했다. 진단서를 뜯고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아빠의 이름과 그 옆에 쓰인 병명이었다. 병명은 바로 ‘간암’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행히 초기로 진료를 해서 잘 됐는데 우리 아빠가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죽는 것은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았는데 아빠가 그럴 뻔 했다는 걸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 정말 무섭고 충격적이어서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다.

아마 그 눈물에는 1년 동안 세상을 냉정하게 보느라 표현하지 못했던 내 감정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집 청소가 끝나고 아빠와 영상통화를 했다. 영상통화를 하는 내내 아빠한테 미안하고, 고맙고 죄송스런 온갖 감정이 다 느껴졌다.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참고 영상통화를 마친 후 눈물은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이 흘렀다.

그 일이 있은 후 겨울방학이 되었고, 나는 겨울방학 내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자리 그대로에서 힘들지 않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챙겨야 할 것은 챙기며 세상을 냉정하게 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자’가 내 결론이었다. 때론 내 감정을 적당히 표현하며 대들지 않고 적절한 선을 지키며 사는 것,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는 것, 이런 것이 내가 정한 내 삶의 방향이었다. 그렇게 산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가족은 내가 2학년이 된 3월, 드디어 다 함께 살게 되었다. 사실, 최근 아빠가 일 때문에 따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외롭거나 힘들지는 않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삶이 그렇게 어두웠나? 예전에는 정말 어둡고, 힘들고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저 사춘기 과정 중 누구나 있을 수 있는 방황이었다. 나만 이런 방황을 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황을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이 당장 힘들어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건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하나의 방황 아닐까?

그렇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 기꺼이 이해하며 즐기며 살고자 한다.

국어 선생님 말씀
어두운 터널을 지나 온 서현이라는 표현이 맞을까요? 선생님은 중3이 된 너희가 자신의 16년 삶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설계도 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서전 쓰기를 계획했었습니다. 그 마음을 서현이가 잘 이해하고, 이렇게 진실한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 내어 표현해 준 것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글이 선생님의 마음에 울림을 준 건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기꺼이 드러내고, 또 자신의 방황의 터널을 힘차게 스스로 헤치고 나와 준 점입니다. 앞으로의 삶에 또 어둠이 있더라도 이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생긴 것 같아 걱정되지 않습니다. 진실한 서현이의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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