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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45>앤 모로 린드버그- 대화, 블랙커피처럼 자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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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45>앤 모로 린드버그- 대화, 블랙커피처럼 자극적인…
  • 홍성신문
  • 승인 2019.04.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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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미 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좋은 관계는 탱고와도 같다. 그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등거리(等距離) 스텝이다. 몰입하되 구속하지 않고, 자유하되 방임하지 않는 중용의 상태, 그것이 바로 ‘좋은 관계’ 인 것이다. 탱고의 기본은 힘의분배에 있다. 뜨거운 열정으로 플로어에 서지만, 그러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열정으로 상대와 연합할 때 탱고는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열정이야말로 관계를 훼손하는 가장 큰 덫인지도 모른다. 통제되지 않은 열정은 구속과 집착, 얽매임으로 상대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고독을 아는 자, 행복 또한 누릴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타자와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며 긴장과 이완을 구사할 때 좋은 관계는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춤을 통해 관계의 역학을 풀어낸 건 미국 작가 앤 모로 린드버그였다. 평생 마음을 지키려 애쓴 그녀는, 글을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운 작가이자 명상가였다. 그녀에게 삶은, 두려움과의 끈질긴 싸움이었다. 20개월 된 아들이 유괴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차라리 지옥이었다. 창문을 열고 들어와 아들을 유괴해간 범인은, 아기의 생명을 담보로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다. 협박과 회유로 범인을 달래며 그녀는 시시각각 몰려드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뺄셈을 시작했다. <무엇이 있어서> 행복했던 그동안의 삶은 <무엇을 내려놓는> 비움의 삶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비워낸 건 <내 삶은 내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삶이란 때로 남이 던져놓은 주사위로도 바뀔 수 있는 예측 불허의 것임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운명을 주관하는 신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유괴된 아들이 시신으로 발견되며 그녀의 불행은 극에 달했다. 영성 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망의 시간들을 보내며 그녀는 마침내 영성 훈련의 전도사가 되어갔다. <한 사람이 해변의 조가비를 다 가질 순 없는> 삶의 현실과 <절망 속에서도 꽃처럼 피어나는 삶의 희망>은 세상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에세이가 되어 독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녀가 쓴 에세이집 <바다의 전설>은 관계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영혼의 속삭임이었다. 그녀에게 대화는 쓴맛을 통해 단맛을 찾아가는 블랙커피와도 같았다. <멋진 대화는 블랙커피처럼 자극적>이라는 그녀의 표현처럼 그녀는 늘 대화로 삶의 허기를 채우려 애썼다. 아이가 유괴된 미국 땅을 떠나 프랑스로 하와이로, 삶의 터전을 바꿔 산 그녀에게 대화는 블랙커피만큼이나 소중한 일상의 매혹이었다. 설탕과 크림 없이 승부하는 블랙커피처럼, 그녀의 삶 또한 겉치레의 형식을 걷어낸 생살이자 민낯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대화는 세상을 향해 소리칠 수 있는 가장 큰 울림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쓴 한 줄의 표현처럼 <대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잠들 수 없는, 블랙커피와도 같은 매혹>이었다.

그녀가 블랙커피에 매혹된 건, 불행을 통해 얻은 파 드 되(2인무)의 원리 덕분이었다. 유복한 집안, 유능한 남편, 그리고 부족할 것 없는 윤택한 삶은 자칫 크림과 설탕이 섞인 달달한 커피가 될 수도 있었으나, 아이의 유괴를 통해 얻은 불행과 관조는 마침내 달달함을 넘어 블랙커피와도 같은 삶의 본질을 보게 한 것이다. 그녀가 평범한 주부를 넘어 자신만의 소리를 가진 영성의 작가로 거듭난 건 모두가 불행을 통해 얻어진 연단의 결실이었다. 탱고든 삶이든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는 결코 완성될 수 없음을, 그녀는 오랜 인고를 통해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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