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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42> 탈레랑 -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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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42> 탈레랑 -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운
  • 홍성신문
  • 승인 2019.04.04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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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미 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커피는 유혹이다. 그것은 지루한 일상을 뒤흔드는 낭만의 자히르다. 커피가 낭만이 되는 건, 커피를 통해 형성되는 공감과 소통 때문이다. 자기 안에 갇혀 자신만을 탐구하는 여타의 자히르와 달리, 커피는 타인을 끌어안는 소통의 매개가 되어준다. 구획과 경계를 넘어 네 편과 내 편을 끌어안는 관계의 사다리, 타인과 더불어 연대하며 서로의 다름조차 수용하는 존재의 일체감이 커피라는 자히르가 주는 매력인 것이다.

커피의 유혹을 노래한 건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커피란 ‘포도주보다 달고 키스보다 황홀한’ 매혹의 자히르였다.

평생을 체제의 굴레 속에 갇혀 산 그였다. 프랑스 혁명을 넘어 나폴레옹, 부르봉, 루이 필립 시대를 두루 관료로 산 그에게 마음의 등거리(等距離)를 유지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두 개의 선로가 평행을 유지하듯, 격변기의 통치자를 치우침 없이 지켜내는 일. 그것은 그에게 그 어떤 시련보다 벅차고 힘든 일이었다. 마음의 발톱을 감추고 세상의 모든 것을 실리와 효용, 이해와 타산으로 계산한 그는 아내조차도 위험이 될까 늘 경계한, 신중하고도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커피는 감춰진 속내를 쏟아내도 좋을 매혹의 음료였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그의 커피 예찬은 어쩌면, 관료로서 드러낼 수 없었던 뜨겁고도 순수한 자기 자신의 마음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삶은 늘 모순의 연속이었다. 부모는 귀족이었으나 돈이 없었고, 야망은 컸으나 절름발이였다. 그러한 삶의 모순들은 단단한 생존 본능이 되어 그를 성장시켰다. 어린 시절 서랍장에서 떨어진 그는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군인 대신 성직을 택해야 했다. 뒤늦게 입학한 신학교에선 5년 만에 퇴학당했고 그 때문에 그는 하급 사제로 성직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런 그를 세상의 중심으로 불러낸 건 대주교였던 그의 삼촌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앞둔 1788년, 그는 마침내 주교로 임명됐고 신분별로 모이던 삼부회를 국민의회로 바꾸며 개혁에의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바스티유 습격 1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했다. 정치범들의 수용소였던 바스티유 습격 사건은 왕권에 도전하는 시민들의 봉기와도 같았고, 그러한 봉기를 기념해 집전한 미사는 왕권을 향한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왕은 격노했고 그는 파면됐지만 그러나 그는 프랑스 주 행정관에 취임하는 것으로 새로운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불사신과도 같았다. 유비를 지켜낸 제갈 량처럼 그는 보수와 혁명을 아우르는 책사가 되어 프랑스 역사에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난세의 영웅, 나폴레옹을 발탁한 것은 프랑스 역사의 물길을 바꾼 운명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세 치 혀를 조심하라’ 불평과 험담 대신 희망의 말을 전하려 애썼던 그는 세 치 혀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안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혀끝에 와 닿는 커피 한 모금에서도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운’ 카페인의 면모를 가감없이 읽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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