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조의 친구 도응 선생 묘일원과 전설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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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조의 친구 도응 선생 묘일원과 전설가든
  • 홍성신문
  • 승인 2019.03.2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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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응봉면 지석리 국도변-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우리고장 예산군 응봉면 지석리 국도변에는 의미있는 문화재가 자리잡고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 90호로 지정된 도응 선생 묘일원(都膺 先生 墓一圓)이다. 고려 말의 충신 청송당(靑松堂) 도응 선생 내외분과 그의 손자 순손(順孫) 내외의 산소이다.

도응 선생은 성주도씨 7세손이며, 어릴 적부터 태조 이성계와 친구사이였다. 벼슬은 문하첨의찬성사(門下僉議贊成事)에 올랐지만 이태조가 고려를 무너뜨리자, 충신은 불사이군을 외치며 벼슬을 내던지고 홍주 노은동(魯隱洞)에 숨어 살았다. 노은동은 지금의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를 말한다.

도응선생의 아버지 길부(吉敷)는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의 부장으로 충청과 전라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대광보국숭록대부로 문하첨의찬성사에 오르고 성산부원군에 봉해졌다. 하지만 1388년(우왕 14)에 일어난 권문세족(權門世族)인 이인임 축출사건에 연루되어 참화를 당했다.

이후 이태조가 조선을 창업하고 왕위에 오른 후, 어릴 적 친구인 도울 선생에게 대장군을 두 번 임명하고, 다섯 차례나 벼슬을 내리며 함께 일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끝내 꺾지 않았다. 도응 선생은 두문동 72현의 중심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이태조는 도응 선생의 절의에 감복하여 청송당(靑松堂)이라는 호를 내렸다고 한다.

도응 선생은 이태조의 명을 거절한 후, 후손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전국에 흩어져 살도록 했다. 장남 사면(思勉)은 연산 어은으로, 차남 사심(思諶)은 충북 괴산으로, 삼남 사민(思敏)은 경남 함양으로, 사남 운봉(雲峯)은 경북 군의로 흩어져 살도록 했다. 그 후손들이 지금은 곳곳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가문을 빛내고 있다.

 

한편 도응선생 묘역 바로 아래쪽에는 전설가든이라고 부르는 옛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이 도울 선생 집안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솟을대문에 웅장한 건물 규모로 보아서, 평범한 사람이 살던 집은 아닌 듯하며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 대교 사거리에서 예산군 응봉면으로 넘어가는 경계지점이다. 옛날에는 건물 앞쪽으로 국도가 지나갔지만, 지금은 국도가 직선화되면서 길옆으로 숨은 듯 자리잡고 있다.

전설가든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오래전 한밤중에 보령 쪽에서 천안 부근으로 운행 나갔던 택시가 돌아오는 길에 아가씨 한명을 태웠다. 손님인 아가씨는 택시가 전설가든 앞에 도착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아가씨는 택시에서 내리며 주머니에 돈이 없다고 했다.

“저어기 저 불빛 보이는 기와집이 우리 집입니다.”

아가씨는 길가 기와집을 가리켰다. 얼른 가서 돈을 갖고 나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택시기사는 아가씨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한참 기다리다가 불빛이 나오는 기와집으로 찾아가 대문을 탕탕 두드렸다. 집주인이 깜짝 놀라며 대문을 열고 나왔다.

“아니, 이렇게 깊은 밤중에 누구시오?”

“댁의 따님은 어디 가셨나요?”

“우리 딸이라니요? 댁은 뉘시오?”

집주인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조금 전에 집안으로 들어왔잖습니까? 택시비를 갖고 나온다면서 집으로 왔는데요.”

택시 기사는 지금까지 상황을 집주인에게 설명했다. 사람을 길가에 기다리게 한 아가씨가 괘씸하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라구요……?”

집주인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이고오, 우리 딸이 저 죽은 제삿날에 집을 찾아왔구나! 아이고, 아이고, 아직도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세상을 맴도는구나……!”

집안은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잠시 후에 택시기사는 안방으로 안내되어 전후사정을 전해 들었다.

꼭 1년 전에 딸이 서울 쪽으로 출타했다가 집에 오던 중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바로 오늘이 딸이 세상 떠난 제삿날이었다. 택시기사가 아가씨를 태웠던 곳은 교통사고가 난 지점이었다.

이후 이런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이곳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TV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에도 방영되었다는데 확인은 못했다.

옛날에 전설가든은 한동안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후손들에 의해 잘 보존 관리되고 있다. 건물 옆에는 식당이 들어서서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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