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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36> 구스타프 3세-쌍둥이 카페인 실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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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36> 구스타프 3세-쌍둥이 카페인 실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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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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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 예술은 잊혀진 사람을 소환하는 소중한 매개다. 겹겹이 쌓인 시간 너머 누군가의 삶이 궁금할 때, 예술은 세월 속으로 사라진 그를 현실 곁으로 소환해준다. 예술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역사가 아니다. 실재와 상상 사이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재미와 의미, 나아가 반전을 엮어내는 게 바로 예술인 것이다.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가 그렇다. 거기엔, 가면무도회에서 저격당한 구스타프 3세의 역사가 담겨 있다. 18세기 스웨덴 국왕이었던 그는 지배계층인 귀족을 누르고 절대 왕정을 수립했다. 귀족은 반발했고 내분을 무마하려 그는 주변국과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근위대원 앙카르스트램이 쏜 총에 맞아 결국 세상을 떠난다. 러시아 스파이로 몰린 앙카르스트램을 귀족들이 부추긴 결과였다. 오페라는 구스타프 3세가 충직한 신하, 레나토의 아내를 사랑했고 그 때문에 레나토가 그를 암살했다 소개하지만 그는 레나토라는 심복을 두지도, 그의 아내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그는 정략 결혼한 덴마크 공주, 마그달레나를 멀리해 동성애자란 오해를 받아야 했다.

그가 커피를 동원해 귀족들을 견제한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당시 터키를 통해 유입된 커피는 귀족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금단의 열매였고 평민의 지지를 얻어 귀족을 견제하려 한 그는 귀족들의 커피 소비를 단호히 금지했다. 여기엔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 여긴 그의 시각 또한 한몫했다. 그의 눈에 비친 커피는 사약만큼이나 해로웠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체 실험이 필요했다. 때마침 스웨덴엔 살인죄로 사형 선고된 쌍둥이 형제가 있었고, 그는 한 명에게 차를, 다른 한 명에겐 커피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인체 실험에 나섰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의사를 참여시킴으로써 실험에 공정을 더했다.

실험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차를 마신 죄수도, 커피를 마신 죄수도 건강은 나빠지지 않았고 실험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그 사이 의사가 죽었고, 구스타프 3세 또한 운명을 달리했다. 그의 나이 46세 되던 1792년,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가면무도회를 통해서였다. 모두가 가면을 쓴 익명의 자리였지만 국왕은 세라핌 훈장을 가슴에 달아 암살자들의 추적을 피할 수 없었다. 국왕은 금세 죽지 않았다. 총에 맞은 상처가 악화되는 동안, 그는 음모자들을 체포했고 쿠데타를 진압했으며 그의 아들 구스타프 4세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커피는 악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았다. 차를 마신 죄수는 83세로 죽었지만 커피를 마신 죄수는 그보다 오래 살아 카페인의 유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카(Fika)라는 스웨덴 고유의 커피 문화를 만들어냈다. 막다른 골목에서 출구를 만나듯, 막막한 분위기를 커피로 녹여내는 스웨덴식 소통 방식이었다. 그 자리엔 늘 선물처럼, 루세캇이라는 이름의 빵이나 페파르카카라는 생강 쿠키가 등장했다. 예술이 윤색을 통해 풍성해지듯 커피 또한 간식을 통해 풍성해진다는 걸 그들은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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