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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25>/ 어설픈 영어 한마디 덕에 노신부 축복을 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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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25>/ 어설픈 영어 한마디 덕에 노신부 축복을 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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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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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홍성읍 남장리>
 

산마르틴델까미노의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는데 주인여자가 길을 떠나는 순례자마다 포옹과 키스를 해주며 오늘의 까미노를 축복해 주었다.

여러 마을을 지나 몇 개의 언덕을 넘고 숲을 지나 큰 십자가가 서있고 아름다운 아스트로가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은 살랑 불고 경치도 좋아서 가방 내려놓고 잠시 쉬어 가려고 벤치에 앉았다. 언덕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 벤치에서 유쾌한 남자가 기타로 이따금씩 묘기를 부르며 부엔까미노라는 가사가 자주 들리는 노래를 흥겹게 부르고 있었다.

풍경을 감상하며 아직 남은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는데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쓰신 할아버지가 낡은 하얀 승용차를 타고 오셨다. 괭이로 심은 지 오래되지 않은 장미와 이름 모를 묘목의 둘레에 난 잡초를 제거하시고 물이 잘 스며들도록 괭이질을 하신 다음 플라스틱통에 담아 오신 물을 정성껏 주고 계셨다. 보기에 돈을 받고 하시는 것 같지는 않고 그곳에서 쉬어 가는 순례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듯 보여서 딸아이 보고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해보라고 했더니 귀찮다는 듯 말을 듣지 않았다.


난 그분에게 뭔가 표현하고 싶어서 “You are  very  good man.”이라고 말했더니 그 분은 날 보고 good man이라고 했냐고 하시더니 당신들도 좋은 사람들이라면서 어디에서 왔느냐 물으시더니 혹시 크리스쳔인지 물으시더니 가톨릭이냐고 묻고 자기는 가톨릭사제라고 말씀하셨다. 생각건대 은퇴하신 신부님께서 순례자들의 쉼터에 꽃과 나무를 가꾸시며 지나가는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 같았다.

 

우리보고 자매냐고 하셔서 모녀간이라고 했더니 나보고 남편은 있느냐 물으셔서 딸아이가 우리아빠는 작년 12월에 암으로 돌아가셨노라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내게 다가오시더니 포옹을 해주시고 이마에 키스를 해주시더니 딸아이와 나의 손을 꼭 잡고 모으시더니 주님의 기도를 같이하자고 하셨다.

그 분은 스페인어로 우리는 한국어로 기도드리고 나서 나와 딸아이의 이마에 십자 성호를 그어주시고 안수해 주시며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실 거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해주시는데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어쩌다 건넨 어설픈 영어 한마디로 까미노에서 우연히 만난 노신부님께 이런 축복을 받다니 그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신부님께 “무초 그라시아스”라고 인사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너무 기분이 좋아 기타연주자에게 1유로를 기부하면서  큰 소리로 ‘올라’라고 외치며 엄지 척 했더니 ‘엘꼬레아노 부엔까미노’라며 흥겹게 노래를 불러줬다.

▲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그 기분으로 언덕을 단숨에 내려와 마을을 지나고 언덕위에 자리 잡은 아스트로가로 들어섰는데 시내 초입에 위치한 첫 번째 알베르게가 우리가 묵어야 할 숙소였다.

오늘 아침 숙소를 출발할 때부터 주인여자의 축복의 인사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는데 하루 종일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고 생각지 않은 축복을 받은 정말 감동적이고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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