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홍성판 ‘사법농단’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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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홍성판 ‘사법농단’을 경계한다
  • 홍성신문
  • 승인 2019.01.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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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이 연일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농단의 뜻은 무엇인가? 깎아(斷) 세운 듯이 높은 밭두둑(壟)으로 직역한다. 의역하면,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3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을 그렇게 차지하고 써 먹었다는 언론 회자다. 그렇게 차지하고 써 먹은 결과, 사법부는 사법대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대로, 치욕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전 현직 국회의원들이 사법농단에 가담했다는 보도가 연일 터지고 있다. 끝을 모르게 하는 사법농단이다.

그런 사법농단이 홍성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어 홍성군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아니 불안을 넘어 홍성군민의 명예를 더럽히고, 치욕스럽게 하고 있다. 홍성군수 선거법 위반 사법처리 과정에서 파생된 일들이다.

홍성군수는 홍성군민 모두의 얼굴이다. 그런 군수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 그 자체만으로도, 홍성군민에겐 명예훼손이고 치욕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법처리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서명운동이 있었다. 서명운동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비난은 언론을 통해 파장으로 번졌다. 2차의 명예훼손이요, 치욕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다가 아니었다. 서명운동에 대한 반작용인가? 사법처리에 대해, 중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시위가 있었다. 3차의 명예훼손이요, 치욕이었다. 어쩌다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가? 자중하고 법원의 판결을 지켜봐야 할 때다. 왜 그런가?

‘사법권의 독립’이란 게 있다. 형사사건 피의자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도 있다. 그런 것을, 진행 중인 재판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선처’도, ‘중형’도 말이다.

사법권 독립은 곧 재판(심판) 독립의 원칙 내지 판결의 자유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재판독립의 원칙 내지 판결의 자유는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의 법원의 독립과 그 자율성, 그리고 재판에 있어서 어떠한 내외적 간섭도 받지 아니하는 법관의 직무상 독립과 신분상의 독립에 의하여 실현된다.

‘무죄추정원칙’은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으로 프랑스의 권리선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 다 사전적 해석이다. 해석에 근거한다면, 선처와 중형을 요구하는 것은 재판에 대한 간섭이다. 해석에 근거한다면, 선처와 중형을 말하는 것은, 피의자를 유죄로 전제하는 것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벗어난 행위다. 자중해야 할 이유다.

다만, 재판에 임하는 김석환 군수의 처신은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부 시민단체의 지적이 아주 틀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기다려 보자. 사법부의 판단이 끝나면, 그 결과에 따른 언급과 행보가 있지 않겠는가?

더 이상의 또 다른 명예훼손과 치욕적인 행태를 일으키지 말길 촉구한다. 촉구의 대상은, 홍성군수나 홍성군민 모두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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