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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 30년 뒷이야기<6>/ 고등학교 짝꿍한테 짓밟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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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 30년 뒷이야기<6>/ 고등학교 짝꿍한테 짓밟혀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9.01.16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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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 18일, 국방부로부터 서산군 해미, 고북면 일대 500만 평에 공군기지를 만들겠다는 통고문 한 장을 받은 인근 주민들이 ‘결사반대’를 외치며 격렬한 투쟁에 들어갔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농토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실향민이 될 수 없으며 전투기 소음으로 난청, 불면증, 저공비행에 따른 불안 등 인체에 미치는 해악과 가축사육의 어려움, 퇴폐문화와 매춘 기지화 우려 등을 제기했다.

홍성군 갈산, 서부, 구항면은 물론 15.5km 떨어진 홍성읍까지 피해지역으로 분류했다.

전투기 소음으로 소, 돼지 낙태율이 30% 떨어진다는 자료도 나왔다.

1990년에 접어들며 토지매입이 시작되자 주민반대 집회가 더 격렬해졌다.

홍성신문은 1990년 4월 30일자에 ‘전투기 폭음 홍성 하늘을 때린다’는 제목으로 두 페이지에 걸친 심층취재물을 내보냈다. 그런데 이경현 기자의 현지 취재 뒷 이야기가 하나 있다.

1990년 4월 25일 서산시청 앞에 2000여 명이 모여 해미공군기지 반대집회가 열렸다.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이 이경현 기자 앞에서 터졌다. 눈을 뜨지 못하는 이 기자는 기어가다 담벼락을 만나 무조건 뛰어넘었다. 그런데 그게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이었다.

검찰 직원들에게 붙잡힌 이 기자는 서산경찰서에 인계됐다.

의무경찰이 복도에 잡혀온 사람들을 줄 세우더니 가슴이 땅바닥에 닿도록 엎드리게 했다.

덩치가 큰 이 기자의 엎드린 모습이 튀어 올라오자 한 의경이 “이xx 똑바로 못해”하면서 군화발로 두 번 짓눌렀다. 이 기자는 그 뒤 30년 동안 허리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여러해 지난 뒤 이 기자는 홍성고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같이 앉았던 짝꿍과 부부동반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 서산경찰서에서 이 기자를 군화발로 차며 누른 의경이 그 짝꿍 친구였던 사실을 알고 서로 놀랬다.

서로 얼굴을 안 쳐다본 행동이라 알지는 못했었다. 이 기자 짝꿍은 지금 부천시청에 근무한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을 찾아보니 1989년 말 홍성군 한우는 2만100마리, 돼지는 10만7200마리로 전투기 폭음때문에 축산홍성 사양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걱정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홍성군 한우는 5만3000마리, 돼지는 57만 마리로 늘어났다. 당시 주민들은 공군비행장이 민간항공기 취항으로 이어지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지금 홍성 주민과 정치인들은 민항기 취항을 위해 동부서주하고 있다. 해미공군비행장으로 피해를 본 주민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종 어려움을 안은 채 지구는 계속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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