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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 30년 뒷이야기<5>/ 신혼여행 반납하고 안면도 핵폐기장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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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 30년 뒷이야기<5>/ 신혼여행 반납하고 안면도 핵폐기장 취재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9.01.10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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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2일 과학기술처는 안면도에 우리나라 9개 핵발전소와 전국의 병원, 연구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처분장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태안군과 홍성군, 서산시, 보령시 등 충남서해안 전 지역이 경악, 격렬한 반대투쟁에 나섰다. 안면도 이장 35명이 전원 사퇴하고, 모든 학교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등 도민이 하나로 뭉쳐 승언리시외버스터미널에 1만 3000 여명이 모여 궐기대회를 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주민 동태를 파악하는 태안군청 공무원 5명을 붙잡아 구타하고 승용차와 현장사무소 포크레인을 불태운 뒤 안면지서를 불태우고 지서장 관사를 파괴했다.

당국은 태안에서 안면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 연육교를 차단하고 치안본부 제2차장 지휘 아래 전투경찰 20개 중대 2500 여명을 긴급 투입해 안면도 일대를 장악했다. 새벽에는 여관을 급습, 투숙했던 외지인과 주민, 학생 70여 명을 연행했다. 8일 정근모 과기처장관이 텔레비전에 나와 백지화를 발표할 때 까지 일주일 동안 전쟁을 방불케 했다.

안면도에서 직선거리로 태안보다 가까운 홍성에서도 30개 시민사회단체가 안면도 핵쓰레기장결사반대 투쟁위원회를 결성, 홍성신문 광고, 전단지 거리 살포, 안면도 투쟁단 지원 등에 적극 나섰다.
한편 홍성신문은 이경현 기자(현재 사장)가 안면도 사태 발생 다음날인 11월 3일 결혼식을 올리고 속리산으로 3박 4일 신혼여행을 간 때였다. 나는 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신혼여행을 중단하고 오라는 말은 못하고 긴박한 상황 설명만 했다. 남자 기자가 자신 밖에 없는 사정을 아는 이 기자가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와 취재에 나섰다.

안면도에 들어가는 연육교가 차단되자 이 기자는 남당리에서 배 한척을 빌려 타고 남쪽 끝머리인 영목항에 내렸다. 섬 내 버스를 비롯해 모든 차량 통행이 금지된 상태여서 승언리 시위 현장까지 걸어서 들어갔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올 수 없어 여관에 투숙했는데 새벽 3시경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이 기자도 연행됐다. 당시 주간홍성 기자임을 밝혔지만 창간된지 2년밖에 안 된 타 지역 신문을 알아줄리 없었다. 마침 홍성 출신 손규성 대전 주재 한겨레신문 기자를 만나 도움으로 안면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홍성신문은 안면도 이경현기자 발 호외 1만부를 발행해 거리에 뿌리며 진상을 알렸다. 정부가 그동안 발표한 ‘서해안시대 도래’는 허구였나를 따지고 장기적으로 반핵운동 전개가 필요하다는 심층기사를 몇 차례 내보냈다. 이 기사들은 5년 뒤 정치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2개월 발행정지 처분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등장하기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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