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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30년 뒷이야기(3)/ 야구방망이 싣고 다니며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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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30년 뒷이야기(3)/ 야구방망이 싣고 다니며 취재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8.12.27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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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였다. 처음에 좋은 의도로 시작한 공적기관이 중간에 잘 못 돼 홍성신문이 심층보도로 문제점을 대서특필했다.

새벽 1시경 책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밤중에 조심해서 다니시오, 칼 맞지 말라는 법 있소?”라는 것이었다. 당시 신문 마감일은 항상 밤 열두시 넘어야 편집이 끝났다. 집 근처 홍동면파출소에 가끔 들리는데 그런 경우에 대해 물어봤다. “경찰도 항상 신변 보호장치를 하고 다닙니다. 자동차 운전석 옆에 야구방망이 하나 싣고 다니면 마음으로라도 불안이 줄어듭니다”고 말했다. 빨간색 프라이드 차를 갖고다녔는데 다른 사람을 태우면 웬 야구방망이냐고 묻는다. 요즘 운동이 부족해 틈나면 야구 연습중이라고 둘러댔다. 2년 쯤 그렇게 다녔다.

지방선거에 출마해 인사하러 다니는데 어떤 사람이 “나는 당신 절대 찍을 수 없다”며 10년 전 자신에게 불리하게 보도된 기사를 상기시켰다.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기사였다.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구나. 기자가 선거에 출마하면 당선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이 많을까? 내가 왜 이런 일을 자임하며 사나 생각하면 인간적으로 쓸쓸하다.

미래학자 박성원씨가 쓴 책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 다음과 같은 가상 이야기가 나온다.
“한 지역신문의 2022년 12월 31일 송년특집은 지난 1년 동안 모든 오보를 게재하며 잘못을 시인했다. 팩트가 틀린 것은 물론이고 사실관계는 맞지만 시대적 흐름을 읽는데 실패한 기사들도 모두 게재했다. 시대와 정의에 역행한 기사 밑에는 기자의 반성문도 실렸다. 성찰적으로 과거를 돌아보려는 기자들의 태도는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본 경제연구소, 시민단체, 공무원협의회, 의사협회, 교원단체 등 수많은 조직들이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제성장이라는 단일한 목표 성취를 위해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을 고해성사하듯 털어놓았다. 성장하지 않으면 곧 망할 것이라며 내뱉았던 거짓말들, 편파적인 보고서들, 눈 감았던 비리들, 숨겨왔던 실수들, 잘못인 줄 알면서 행해졌던 숱한 행동들, 데이터 조작들...이들이 털어놓은 사실들은 얼마나 깊이 병들어있나 우리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국의 CNN, 영국 더 타임즈 등 외신들이 한국사회 시민들의 이러한 고해성사 물결에 놀라워하면서 새로운 코리안 웨이브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수사나 고소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사회는 오히려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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