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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태안 안흥성(安興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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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태안 안흥성(安興城)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12.26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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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내다보이는 안흥성 남문 모습

우리고장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안흥성(安興城)이 있다.

 옛날에는 안흥진성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시대에 쌓은 것으로 전해온다. 조선 효종 임금(1655년) 때에, 경기도 선비인 김석견이 안흥성의 필요성을 조정에 건의했다고 한다.

 이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안흥은 바닷가에서 10여 리 튀어나와 있는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양식을 저장하면 훌륭한 진영이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므로, 성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 남문지에서 바라본 안흥 앞바다

이후 안흥성은 서해안 방비 및 조운선의 호송에 큰 역할을 했고, 중국사신을 맞이하는 역할도 했다. 안흥성은 240여년간 군사적인 중요역할을 해오다가 1894년 이후로 폐성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에 성내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타고 없어지면서 역할이 중지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성곽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안흥성은 삼면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어서 성위에서 바라보는 앞바다 모습이 천하일품이다.

▲ 안흥성 모습

안흥성 안에는 백제 무왕 34년에 나라의 안녕을 위해 창건했다는 태국사가 있다. 태국사는 조선초 세종대왕의 명으로 중창되어 중국 사신들이 올 때마다 무사항해를 빌었다고 한다. 국난시에는 태국사의 주지스님이 18개 읍에 있는 각 절의 승군을 지휘했다는 말이 전한다.

 안흥 앞바다는 옛날부터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조운선을 비롯한 외국의 무역선이 항해하다가 수없이 파산하여 가라앉은 바다로 유명하다.

▲ 안흥성의 서문 수홍루 모습

이런 이유로 옛날에는 난행량(難行梁)이라고 불렀다. 난행량이라는 이름이 좋지 않아서 안흥량(安興梁)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옛날부터 안흥성 안에는 희귀한 성씨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0개 이상의 다양한 성씨들이 살면 흉년이나 기근을 면하고, 전쟁에서도 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열개 이상의 성씨가 살면 모든 것을 이겨내는 땅이라는 뜻으로,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했다. 원래는 ‘십성지지(十姓之地)’였는데, ‘십승지지(十勝之地)’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 사투리로 성(姓)을 승(勝)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 용굴 입구 모습

이런 믿음은 옛날 정감록이라는 책의 도참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민간에 내려오던 속설에라도 의지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아보겠다는 간절한 뜻이 담겨있다고 불 수 있겠다.


 옛날에는 왜구들의 습격이 잦아서 민간인들이 성안에 사는 것을 꺼려했다.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주민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안흥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나온 도자기 한 점이 문화재 발굴에 큰 역할을 했다. 인근 바다 속을 조사한 결과, 수백 년 동안 가라앉아있던 보물급의 도자기들을 수없이 건져 올린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안흥 앞바다 마도 해역에서는 옛날 배들이 가라앉은 곳에서 보물들을 찾는 작업과 함께 안흥항 앞에 박물관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다.

▲ 용굴 천정 모습

안흥성 아래 산모퉁이를 돌아서 안흥항으로 진입하려면 절벽에 커다란 굴이 하나 있다. 처음 보기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있을 법한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한 굴이다.

 이 굴 이름이 용굴이다. 옛날에 백 년 묵은 구렁이가 또다시 백 년 동안 도를 닦아서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곳이다.

 굴의 길이는 원래 100m 정도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중간부분이 무너지는 바람에, 30여 미터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굴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터가 있고 하늘이 뻥 뚫려 있다. 뻥 뚫린 천정을 뚫고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옛날에 용이 승천하기 전에는 안흥 앞바다에 풍랑과 파도가 잦아서 사고가 많았다. 용이 승천한 후에 바다가 잔잔하게 가라앉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용이 승천한 후부터 옛날의 ‘난행량’이라는 앞바다 이름이 ‘안흥량’으로 바뀌었다는 전설이다. 용굴은 절벽 아래 도로 옆에 있으므로 차로 지나가면서 살펴볼 수 있다.

 용굴을 살펴본 후에, 안흥항과 신진항으로 가서 서해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기분도 아주 좋다. 돌아오는 길에는 연포해수욕장이 바로 길옆에 있어서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

 안흥성은 1973년 12월에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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