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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 30년 뒷이야기<1>/ “신부감을 구합니다” 광고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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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 30년 뒷이야기<1>/ “신부감을 구합니다” 광고로 시작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8.12.14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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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은 12월 3일 창간 30주년 기념 특집호 1면을 30년 전인 1988년 12월 1일 창간호 1면을 복사해 배치했다.

창간호는 표지를 넘겨 오른쪽 3면 전체를 군민들의 의견광고로 채웠다. 대기업이나 회사 광고들은 뒤로 미루고. 18명의 평민 광고 중 홍동면농촌총각결혼문제위원장 이름으로 된 ‘신부감을 구합니다’가 눈에 띄었다. 광고 내용은 “신체 건강한 31세 농촌 총각. 고졸. 논 10마지기와 집 있음”으로 돼 있다. 심각한 농촌 청년문제를 반영한 것이며 홍성신문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출발 선언이기도 한 광고였다. 

10~11페이지는 창간 기념 특별대담으로 “홍성의 특성을 살려라”는 제목의 기사가 길게 수록돼 있다. 대담자는 송건호 한겨레신문 발행인, 유재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광성 홍성신문 발행인이었다. 이 자리에서 송건호 사장과 유재천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시·군 단위 지역신문은 홍성신문 외에 다른 자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주민 수백명이 주주로 참여해 공동으로 만드는 신문을 우리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해방 전후부터 6·25전쟁까지 우리나라 중앙일간지 홍성지국장들은 신문 보급을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했다. 지국장은 취재까지 맡아 기사를 올렸다. 만해 한용운 선사의 외아들 한보국은 동아일보홍성지국장을 하며 젊은 지식인들이 모이는 사랑방으로 제공했다. 여기 드나들던 손재학, 유승준, 김영환 등 여러 사람들은 해방직후 홍성의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됐다. 중앙지들은 1963년부터 6면에 지방판을 설치하여 주재기자를 두면서 지국장과 취재기자가 구분됐다. 당시 홍성 주재 기자는 8명으로 홍성, 서산, 당진, 예산, 보령, 서천, 청양 8개군 소식을 ‘홍성발’로 보내 홍성은 충남 서부지역 언론의 중심지였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1988년 한국 최초의 지역신문이 홍성에 태어난 것이다. 지방자치시대 동반자를 자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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